[야고부] 언청이 아니면 일색

입력 2022-02-16 19:56:33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대선이든 시골 동네 선거든 선거판에는 온갖 말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당락이 뻔히 갈리는데 이것저것 가리거나 점잔 빼기란 애초 무리다. 승패가 걸리면 부모 자식도 봐 주지 않는 건 선거나 도박이나 매한가지다. 자칫 선거판이 과열되면 상대를 향해 쏟아내는 저열한 언사는 시퍼런 칼날과 같다. 말이 독침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제20대 대통령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온갖 중상모략과 흑색선전,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여야 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해 쓰는 '찢' '항' '3철수'와 같은 비속어는 기본이다. 이런 아무 말 잔치가 여야 각 당에서 분출되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흘러넘치자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언청이 아니면 일색'이라는 속담이 있다. 상대를 칭찬하는 체하면서 남의 결점을 비꼬는 말이다. 가령 '마삼중' 같은 표현이 이런 축에 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지칭하는 은어인 마삼중은 '마이너스 삼선 중진'의 줄임말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이나 떨어진 야당 대표를 조롱하고 자극하는 말인데 이 정도의 표현 수위는 그나마 양반이다.

문제는 상대를 향한 저주와 분노의 말과 유권자를 속이는 거짓말이다. 아무리 선거가 기세 싸움이라고 쳐도 타락하고 거친 말싸움은 여야 정당의 수준을 의심하게 할 정도다. 이번 한국 대선판이 물불 가리지 않는 사생결단의 대결장이 되자 외신들도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십 리가 모랫바닥이라도 눈 찌를 가시나무가 있다'는데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유권자가 바라는 건 마타도어가 아니라 인물과 정책이다. 정정당당하게 인물 겨루기가 힘드니 무책임한 선전선동이 판을 치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다.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을 내세웠다면 경제 해법을 유권자에게 알리면 되고,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라면 어떻게 국민에게 보답할 것인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 물론 당선을 목적으로 한 거짓말이나 임기응변은 안 된다. 거짓말이나 저열한 네거티브보다 깨끗하고 품위 있는 말이 힘이 더 세고 감동을 주는 법이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3월 8일까지 이제 20일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