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인류의 파괴자, 세상의 독".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한 말이다. 플리니우스는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폼페이가 화산재에 묻힐 때 나폴리 근처 미세눔의 로마 해군기지 사령관이었다. 그때 구호활동을 펼치다 숨졌다.
2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가 베수비오 분화와 폼페이 매몰의 참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플리니우스와 함께 살던 조카 소(小)플리니우스의 현장 관찰기록 덕분이다. '박물지'라는 책을 써 당대 학문을 정리했던 플리니우스가 "인류의 파괴자, 세상의 독"으로 표현한 인물은 로마제국 5대 황제 네로다. 폼페이 비극 11년 전인 6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네로를 로마 원로원은 '국가의 적'으로 규정했다.
네로는 그리스문화 덕후, 올림픽 마니아였다. 기원전 776년 1회 올림픽이 열린 이후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던 그리스 민족 제전 올림픽은 로마시대에도 계승됐다. 네로는 관중석에서 환호를 지르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선수로 직접 뛰어들었다. 네로가 선수로 뛴 종목은? 시낭송 경연. 고대 올림픽에는 문학 경연도 있었다. 거북 등껍질에 줄을 맨 현악기 리라를 켜며 서정시를 낭송하는 대회다. 요즘으로 치면 국민 가수 경연이라고 할까. 네로는 원로원 의원들이 자신의 시낭송 실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르시시즘의 극치라고 할까.
네로는 올림픽 체육 종목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종목은? 전차 경주. 1959년 '벤허'의 장쾌한 경주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임에도 스펙터클 영화의 진수로 손색없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가 보면 전차 경주장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의 드넓은 터와 잔해가 화려한 전설을 토해낸다. 네로 시대에 화려한 대리석으로 반짝이던 경기장에는 무려 30여만 명의 관람객이 입장해 함성을 질러댔다. 서커스(Circus)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네로가 그리스 올림피아를 직접 찾아 경기에 참가한 것은 67년 대회다. 네로의 참가를 위해 대회를 1년 늦췄다는 설도 있으니 제멋대로다. 전차 경주는 말 4마리가 끄는 사두 전차 콰드리가(Quadriga)다. 그런데 네로는 10마리가 끄는 전차를 탔다. 그러고도 네로는 경주 도중 전차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우승 시상대에 오른 인물은 네로. 끝까지 달렸으면 1등을 했을 것이라는 판정 덕분이었다. 내맘대로 규칙 올림픽 우승 기념 퍼레이드를 수도 로마에서 펼친 직후 네로는 국민적 저항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전 세계 스포츠팬들은 제24회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네로의 올림픽을 봤다. 내맘대로 규칙이 2천 년 넘게 이어지는 현실이 놀랍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9일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 청산 수사를 할 건가"라는 질문에 "해야죠"라고 했고, "수사가 정치 보복으로 흐르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자기네 정부 때 정권 초기에 한 것은 헌법 원칙에 따른 것이고, 다음 정부가 자기네들의 비리와 불법에 대해서 하는 건 보복인가"라고 답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정치권 비리와 불법을 엄단하라는 것은 국민 상식이다.
그러나,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분노"와 "사과 요구" 발언이 나왔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72명 전원이 규탄 성명문으로 청와대의 뜻을 헤아렸다. 우상호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은 "사과할 때까지 규탄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적폐 청산은 자신들만 한다는 오만과 독선에 네로와 중국 쇼트트랙의 '내맘대로 규칙'이 겹쳐진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2017년 SNS 글에 국민은 고개를 끄덕인다.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 보복이라면 그런 정치 보복은 매일 해도 된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