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0년대 '원조 큰손' 장영자 씨 "신군부 권력 쟁취 과정의 희생양"

입력 2022-01-12 17:08:43 수정 2022-11-16 00:10:09

경주에 정착할 듯…향후 재심 소송에다 불행한 개인사 처음으로 밝혀

장영자(78) 여사가
장영자(78) 여사가 "지난 82년 신군부에 의해 억울한 어음사기사건 누명으로 구속됐다"고 주장했다.박진홍기자

1980년대 초 6천400억원대 초대형 어음 사기사건에 휘말렸던 '원조 큰손' 장영자(78) 씨가 경주에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

장 씨는 12일 매일신문 기자와 만나 "경주 남산 인근에 여생을 보낼 단독주택을 알아보고 있다"며 "평생 살았지만 공기 나쁜 서울 대신 과거 인연이 깊은 경주에서 노후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경주를 일본 나라시 같은 역사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에 따라 불국사 인근과 보문단지 개발 등에 적극 참여했었다"며 "향후 평범한 경주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장 씨는 현재 오랜 인연의 경주 모사찰 주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경주에 머물고 있다.

지난 9일 새벽 4년여 간의 수감 생활 끝에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출소한 장 씨는 '출소의 변'을 통해 "지난 82년 신군부의 권력 쟁취 과정에서 내가 희생됐다"며 "향후 재심을 통해 지금까지 4번의 구속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장 씨는 "82년 초대형 어음사기사건은 정치적 사건을 금융 사기극으로 둔갑시킨 것"이라며 "신군부는 실체도 없는 어음을 잔뜩 부풀려 이철희·장영자 부부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장 씨에 따르면 숙명여대 메이퀸 출신으로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70년 초 모방송국 영어교육프로그램 '잉글리시 자킷' 대담자로 활동하던 중 정부기관에 스카우트됐다.

이어 육군과 정보기관 등의 1년 가까운 특수훈련을 받은 후 27세에 중앙정보부 위장회사인 세양에너지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이후 국내 경제계의 큰손이 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

여기에는 서울 세도가 집안의 딸인데다 이순자 여사의 작은 아버지로 12살 많은 언니의 남편인 군장성 출신 형부 이규광 씨의 뒷배경도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81년 결혼한 전 중정 차장보 이철희 씨가 70년대 윤필용사건을 조사했던 신군부와의 악연으로 어려움이 시작됐다"며 "중정이 관리했고 남편이 총책임자였던 일신제강이 80년 초 부도 처리된 것은 모두 정치 공작이었다"고 주장했다.

장 씨는 "어음사기 사건 첫 구속 이후 YS 정권 때 가석방 취소로 자동구속,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형집행 정지에 대한 취소로 자동 구속, 2018년 가족이 연관된 억울한 누명으로 구속 등 4차례 구속에 대해 재심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씨는 처음으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불행했던 2차례 결혼에 대해서도 본지에 털어놨다.

지난 65년 백수건달이었던 김모 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반강제로 혼인신고를 했으나 바로 별거 후 이혼했다.

또 "세양에너지 회장 재직 당시 나를 흠모하던 모기업 회장이 아무도 모르게 혼인신고를 하는 바람에 호적에 두 차례 이혼 흔적이 남게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