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91cm, 판넬위에 아크릴, 혼합재료, 금박 은박, 2021년
단언컨대 세상은 갈수록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이러한 때에 세상만사 생기고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양새를 지배하는 '보편적 법칙' 하나쯤을 익혀 가슴에 지닌다면,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리는 마음의 간사함을 꽉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다투지 않음으로써 이기고, 물러남으로써 나아가며, 비움으로써 채울 수 있다"며 이치를 말했고, 장자는 대종사편에서 "샘물이 마르고 난 뒤 고기들이 함께 땅위에서 곤경에 처해 있으면서 서로 핥으며 몸에 습기를 불어 적셔주기보다는, 차라리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모른 채 자재(自在)함이 낫다"고 설파했다.
얼핏 들으면 경쟁과 갈등 속 상대를 밟아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 노자의 말은 모순 덩어리며, 장자의 비유는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생각의 프레임을 잠시 바꾸면 노자는 경쟁과 갈등 속 상대를 밟아야만 내가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실천적 행위로서 '무위자연'을 통해 세상일의 돌아감이 '저절로 그러함'(自然)에 대한 일깨움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장자는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이해득실에 따른 인간관계에 연연하기보다는 순리에 따른 담담한 인간관계가 오히려 편하다는 충고를 하고 있다. 괜스레 겉모습이나 허례허식에 반해 얽혔다가 인생 꼬인 사례는 적지 않다.
변미영 작 '유산수'(遊山水)는 이 같은 노장사상에 기반을 둔 회화다. 마치 수미산을 중심으로 왕관을 쓴 두 마리 봉황이 서로를 어르는 가운데 화면 가득히 천상에서 목단이 눈처럼 흩뿌려져 내리고 있다. 초현실적 세상임은 분명하나 볼수록 눈을 떼기 어려운 건 아마도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 안식처를 얻고자 하는 일말의 욕구가 언제나 우리네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면에 부조적인 표현법을 도입한 이 작품은 판넬 위에 여러 색의 물감을 차례로 쌓아올려 상당한 두께의 물감 층을 조성하고 조각칼이나 끌 또는 송곳으로 물감 층을 긁어내면서 제작한 것이다. 작가의 '유산수' 시리즈는 대개 이렇게 만들어진다. 물론 실경은 아니지만, 이때 드러난 선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반영되어 작가가 꿈꾸는 이데아적인 이상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변미영은 최근 '유산수' 시리즈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전보다 화면에서의 색의 변주가 다양해졌고 천상을 흩날리던 목단의 개수도 늘어 거의 화면을 모두 채우는 식의 회화로 바뀌었다. 전시 주제도 이전의 단순 '유산수'에서 더 구체적인 '봉황래원'(鳳凰來園)이란 말을 선호하고 있다.
'봉황래원'은 서경(書經)의 '소소구성, 봉황래의'(簫韶九成, 鳳凰來儀)에서 따왔다. '연회에서 연주를 9번 마치고 나니 봉황이 나타나 그 자태를 드러냈다'는 말로 이른바 태평성세를 이루고 음악이 완성되니 봉황과 같은 상서로운 동물이 이에 참여해 그 뜻을 더 높였다는 의미로 태평성세가 될 조짐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사회갈등은 심화되고 청년실업과 저출산은 늘며 포퓰리즘은 득세하고 있다. 더군다나 팬데믹 상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녕 봉황은 어디에 있을까. 변미영의 작품을 보며 언젠가는 오고야 말 봉황의 도래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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