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프리랜서 편집자
"이 책 아세요? 이 부분 좀 읽어보세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동네서점으로 마실갔더니 책방 주인장이 책을 내밀며 권한다. 글을 너무 잘 써놔서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난다며 그가 내민 책은 '그냥, 사람'(홍은전, 2020)이다.
세상에 책은 많기도 많고, 그 많고 많은 책을 만나는 사람들의 방식도 그만큼 다양하다. 20대든, 30대든 혹은 60대든 살아있는 이상 날마다 사는 자취로, 각자의 결로 제 무늬를 새긴다. 그리고 그 결이 어룽진 시선으로 책을 읽으니 꽂히는 구절이 다르고 좋아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다양한 이유로 마음을 뺏기고 다양한 이유로 자신에게 시도와 변화의 계기가 되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 유용성과는 별개로 언제나 짜릿하다. 그리고 그 짜릿함을 공유하고 싶을 때 "이거 읽어 봤어?" 주위에 묻기도 하는 것이고.
간혹 "책이 구원이었다"고 말하는 작가들이 있다. 언뜻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일상의 위로나 휴식이라는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치유의 수단이 되기도 하니 가능한 말인 것 같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레진 드탕벨·2017)에서 어느 의사는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밝고 환한 태양과 같은 환희와 쾌락주의적인 색채가 풍부한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권하고, 우울증에 빠진 듯한 사람에게는 윌리엄 스타이런의 '보이는 어둠'을 처방삼아 권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 문학 작품을 읽는 행위가 우리를 치유해줄 수 있을까. 정말 책이 구원도 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문학 작품을 읽으며 각자의 처지에서 책 속의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이해하고 깨달으며 감정의 정화를 거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형태를 부여해주는지 스스로 질문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질문할 수 있게 된다는 건, 퍽 근사한 일이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텍스트 앞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폴 리쾨르의 말처럼 글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은 곧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그러한 과정이 내 삶에 어떤 영향과 모양새를 부여하는지 질문할 수 있다면, 때로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거나 자신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도 수긍할 만하다.
분명 좋은 책의 어떤 한 구절은 우리 안의 무언가를 건드려 "읽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깊은 변화가 일어나게" 한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그 책방 주인장이 내민 책은 내게 몇 번이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 책이다. 좀 괴로운 질문도 있지만 몇 번이고 할 만한 질문이라 지금도 곱씹고 있다. 가령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찐'으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
비단 책뿐만 아니라 어떤 생활의 장면에서도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스로 질문할 수만 있다면 좀 천천히 가더라도 삶의 모양새가 크게 어긋나지 않고 제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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