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파리지옥 꽃

입력 2021-12-30 10:23:33

이수민 소설가
이수민 소설가

집안의 화초를 바라본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진 뒤 들여놓은 화분이 많다. 파릇파릇한 생명을 곁에 두고 싶어 이기적인 마음에 구입한 모종이다. 쉽게 고사하지 않는 식물부터 골랐다. 필레아페페, 여인초, 야자, 워터코인, 스파티필름과 몬스테라를 분갈이해 창가에 두었다.

손가락을 화분 안으로 넣었을 때 마른 흙이 느껴지면 물을 줘야 한다고 배웠다. 맥 짚는 한의사처럼 화분 속으로 검지를 쑥 밀어 넣었다. 보슬보슬한 흙이 느껴질 때마다 화분을 욕조에 넣고 샤워시킨 뒤 볕을 쬐어주니 물과 햇빛만으로 식물은 싱그러운 잎을 냈다. 식물의 생존 방식은 정결했다.

잎을 내고 꽃을 피울 땐 흙이 자주 말랐다. 콩알만한 원형의 잎을 품은 필레아페페, 자궁에 웅크린 태아처럼 새잎을 말고 있는 여인초와 몬스테라에게 부지런히 물을 먹이며 응원했다. 긴 밤이 지나면 며칠씩 돌돌 말려 있던 연록의 잎도 활짝 펴졌다. 대견했다. 무수한 반복에도 새잎의 탄생은 늘 새로웠다.

화초가 바람직하게만 성장한 건 아니었다. 돌봄을 게을리한 잎은 흉측하게 찢어졌고,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들인 파리지옥은 목마름을 견디지 못해 말라버렸다. 고사한 파리지옥을 물에 담가 봐야 소용없었다. 사람의 나태와 오만이 문제였다. 식충식물의 죽음을 조롱하듯 까맣게 타들어 가기 직전 파리지옥에 파리가 심하게 들끓었다.

갈라지고 갈변한 화초의 잎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그대로 두었다. 자르지 않았다. 지인에게 받은 식물도 마찬가지였다. 장학금 없이 비싼 학비를 감당해야 하는 좌절을 나눠 가진 듯 지인의 화초는 잎을 축 늘어뜨린 채 시들했지만, 다행히 누런 잎 위로 진초록의 새잎이 돋아났다. 그녀도 무사히 학기를 끝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찬바람이 불면서 식물은 하나둘 겨울잠에 빠져든다. 흙 속에 손가락을 넣어도 축축한 감촉은 그대로다. 성장을 멈춘 채 그들은 고요한 겨울을 보낸다. 동면 직전 엉뚱하게 새잎을 뻗으려던 여인초도 이상고온이 끝나고 한파가 몰아치자 어린잎을 품은 채 잠들었다.

화초를 바라보며 2021년과 지난 3개월간의 칼럼을 마무리짓는다. 지면을 통해 독자와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 감사한 일이다. 큰 계획을 세워두진 않았다. 체계적인 독학을 향한 의지만 조금 가져 보려 한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작가나 사상가를 정해놓고 3년간 그 사람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연구하는 작업을 열다섯 번 이상 반복했다고 한다. 끈기없는 잡학에서 나도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파리지옥의 꽃에 대해 얼마 전 책을 읽고 알았다. 파리지옥을 키우면서도 그 식물이 꽃을 피우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높이 뻗은 외줄기에 핀 꽃은 희고 청초했다. 내년엔 과거의 무지와 오만을 딛고 그 꽃을 보게 될까. 부지런히 배우고 돌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