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은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다. 3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 시절 기무사의 세월호 사찰 의혹을 들춰내며 했던 말이다. 여권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 주장은 집요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동향이 기록된 보고서'를 작성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을 포토라인에 세우기도 했다. 사찰한 적이 없다는 이 전 사령관의 항변은 철저히 무시됐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온갖 수모를 겪은 이 전 사령관은 영장 기각 4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사찰 근거로 제시된 보고서는 사찰이 아니었다고 훗날 검찰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은 결론 냈다.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한 정치인은 건재하고, '사슴'이라고 외쳤던 군인만 애꿎게 희생됐다.
이어 청와대에서 민간인 사찰이 포함된 첩보를 생산했다는 김태우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내부고발이 터졌다. 문 정부의 민간인 사찰 DNA가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에선 민간인 사찰 유전자(DNA)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눙치고 나왔다. 역시 김 수사관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돼 곤욕을 치렀다.
이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민간인 사찰 의혹이 고구마 줄기 엮이듯 터져 나오고 있다. 공수처가 통신 자료를 들춘 언론인만 적어도 17개사, 100명 이상으로 늘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까지 대상이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주변 인물 등 통신 자료를 들춘 야당 인사가 20여 명에 달한다. 검찰 개혁에 반대 입장을 밝힌 변호사도,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도 피해 가지 못했다. 통신 자료 조회는 무차별적이다. 아침저녁으로 조회당한 기자도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의 '이성윤 황제 조사'를 보도한 기자는 그 가족까지 뒤졌다.
이쯤 되면 공수처는 공직자 수사처가 아니라 두려울 공(恐), 공수처다. 민간인 사찰에 '게슈타포'라는 비난까지 쏟아지는 마당이다. 공수처 출범 1년이 다 되도록 '사찰' 의혹만 키웠을 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그런데도 이 정부의 언어는 현란하다. 무차별 통신 조회는 '피의자와 통화한 상대방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사찰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다. 앞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불거졌을 때 '민간인 사찰 DNA는 없다'던 청와대는 "재판부 설명 자료 어디에도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며 '체크리스트'라고 우겼다. 증거인멸은 '증거보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는 졸지에 '피해 호소인'이 됐다. '탈원전'을 말하지 못하고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 불러 달라는 것도 똑같다.
권력기관이 공권력을 앞세워 불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면 이는 뭐라 이름 하든 불법 사찰이다. 기자나 야당 정치인 통신 내역을 공수처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자체가 언론 자유에 대한 침해다. 따져 보면 이 정부 아래서 사찰이 잠잠했던 적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이던 '원전수출국민행동' 등 시민 단체의 동향 보고서 10여 건을 만들었다. 자칫 묻힐 뻔했던 진실은 월성원전 1호기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몰래 파쇄했던 문건 530건을 검찰이 최근 복원하면서 드러났다.
아무리 언어 조작을 통해 이미지를 덧씌우려 해도 이 정부엔 민간인 사찰 DNA가 강물처럼 흐른다. 부인하고 싶다면 귀태 공수처부터 없앨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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