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족집게 강사에 매달리는 국민의힘

입력 2021-12-15 10:50:15 수정 2021-12-15 21:42:30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후보자 등록 마감 다음 날부터 선거일까지 23일간이다. 이 기간만 놓고 보면 대통령 선거운동은 단기전이다. 예비 선거운동 기간까지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정당들도 이 단기전 전략에 초점을 맞춘다.

유세, 조직, 홍보, 자금, 정책 등 선거운동의 각 영역에서 막대한 자원을 단기간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선거 지휘권을 맡기느냐는 정당의 사활이 걸린 이슈이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선 후보를 확정하고도 선대위 구성을 놓고 한 달가량 진통을 거듭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그 진통의 중심에 김종인의 역할과 능력을 둘러싼 이견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종인은 이념적으로 우파가 아니며, 국가 경영의 경륜을 지닌 정치 지도자도 아니다. 다만 단기전인 선거운동의 지휘와 조직의 통솔에 있어서 김종인만 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것도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이 단기간의 선거운동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실은 대선일을 100일 앞둔 시점의 후보 간 우열은 거의 뒤집히지 않는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여론조사가 선거 지표로 활용되기 시작한 14대부터 19대까지 6번의 대선에서 이 법칙이 깨진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누른 16대 대선이 유일하다.

비유하자면, 지금 선거운동은 시험을 앞둔 공부와 비슷하다. 평상시 실력을 쌓은 수험생은 차분하게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정리하며 여유를 갖겠지만, 그렇지 못한 수험생은 벼락치기 밤샘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물론 이런 공부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평소 학습량의 차이를 며칠간의 밤샘으로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윤석열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가 과거 발언 논란으로 사퇴한 노재승 씨의 사례를 보면서 이런 원리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김구와 5·18에 관한 그의 발언이 특히 문제가 되었지만, 지금 그 발언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 것인지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발언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재 한국 사회의 담론 지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6공화국 출범은 직선제 개헌을 내세운 1980년대 좌파 진영의 정치적 승리의 결과였고, 이후 좌파는 정치적 정당성을 독점하게 됐다. 한국 사회의 담론 형성을 주도하는 좌파 시민단체들이 대부분 1987년 6공화국 출범 이후 등장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과적으로 지금 우파는 유권자들에게 제시할 정치적 메시지의 가이드라인을 철저하게 좌파 언론과 지식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건 우파가 좌파와의 정치투쟁에서 패배자이자 포로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좌파의 정치적 가치를 우파 정당과 정치인이 나서서 대신 선전해 주는 셈이다.

우파가 평상시에 좌파의 이런 이념적 가이드라인을 돌파하는 실력을 쌓지 못한 채 선거가 닥치면 좌파가 주도하는 어젠다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다. 어젠다 주도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누가 좀 더 단기간의 선거공학을 잘 이끌 수 있느냐에 관심과 노력이 집중된다.

정치공학과 선거전의 '용병' 김종인에게 대선 지휘를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시를 앞두고 거액을 주고 족집게 강사를 모셔와 벼락치기 밤샘 공부에 매달리는 수험생과 지금 우리 우파의 모습이 과연 얼마나 다른가.

지금 우파는 19세기 초 덴마크의 국민운동이었던 '밖에서 잃은 영토를 안에서 되찾자'는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치투쟁의 패배로 상실한 정치적 정당성을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 혁신으로 회복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주인 없는 정당이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떴다방 같은 정치 자영업자들이 운영을 좌우한다. 당비를 제대로 내고 정체성 교육을 이수한 진성당원들에게 공천 등 핵심 의사결정권을 맡겨야 한다. 그래야 정치 이권이 아닌 정치 콘텐츠와 메시지가 유통되고, 어젠다 주도 능력이 생긴다. 이런 변화 없이는 우파는 앞으로도 정치적 패배자라는 악마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