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 판사' 이미지로 화려하게 정치권에 등판, 대권에 도전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그는 당선이 유력했지만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연거푸 쓴잔을 마셨다. 1997년 15대 대선이야 정치 9단 김대중 후보와 겨룬 데다 외환위기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고 치더라도, 2002년 16대 대선은 '질 수 없는 선거'라는 것이 당시 상황 논리였다.
2002년 대선 초반 판세를 놓고 봤을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토끼, 2002년 대선의 최종 승자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거북이라는 것이 대체적 관측이었다.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토끼가 낮잠 자고 일어나 다시 뛰어도 이길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는 게 당시 현역으로 뛰었던 정치인과 기자들의 회고다. 정권 말기의 김대중 대통령이 아들 비리 의혹 사건으로 크게 휘청거리면서 정권 교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솝우화는 틀리지 않았고 2002년 대선의 결론은 토끼와 거북이 원작 내용을 그대로 따라갔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대패로 인해 한때 후보 교체론까지 나돌았던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대세론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참여정부의 문을 열어젖혔고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도 참여정부의 주축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요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른바 '본부장'(본인·부인·장모) 의혹이라는 맹렬한 네거티브 공세에 직면하고 있듯이, 이회창 후보 역시 2002년 대선 때 네거티브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이 후보에게는 선거 초반 호화 빌라 거주 논란 등의 네거티브 악재가 있었지만 치명타를 맞은 것은 이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었다.
2002년 5월 21일, 육군 부사관 출신의 김대업 씨는 "이회창 씨의 장남 정연 씨가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과 전 병무청장 등이 대책 회의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 후보는 "결백을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고 반박했지만 당시 여당은 "믿을 수 없다"고 재반박하면서 여야는 무려 5개월여간 난타전을 이어갔다. 김대업이 제기한 '병풍 사건'을 근거 없는 것으로 검찰이 결론짓고 나서야 정치권의 공방은 끝났다.
문제는 병풍 사건에 대한 법적 결론이 나온 시점이었다. 검찰 최종 수사 결과 발표는 대선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2002년 10월 25일이었다. 김대업의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민주당의 네거티브 전략도 실패로 끝났지만 이 후보의 대쪽 이미지는 이미 상처가 날 대로 나 있었고 승리를 가져올 수 없었다.
시계를 돌려 20대 대선 무대가 펼쳐지고 있는 2021년 12월로 돌아와 보자. 윤석열 후보 역시 몇 달째 부인 김건희 씨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한 공세에 직면해 있다. 이회창 후보는 거짓말쟁이에게 당했지만 김건희 씨 사안의 경우, 일부 경력 부풀리기 등이 정황상 인정되고 있다. 결혼 전 일이기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과 비상식을 바로잡겠다면서 대선에 나온 윤 후보로서는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대선 역사는 다른 어떤 것보다 '후보자 특성 이론'이 지배해 왔다. 후보 가족까지 포함시켜 후보 개인적 요인을 잣대로 삼아 투표한 사례가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윤 후보는 가족 의혹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국민에게 다가가야 함은 물론, 최대한 속도를 내 이른 시일 안에 의혹을 규명하고 해소해야 한다. 윤 후보가 사법시험을 9수(修) 끝에 합격했다는데 그 스피드로는 정권 교체 여론에 응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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