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문화단체가 나에게 함께 오픈스튜디오를 진행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여가생활을 즐기고 싶어하는 일반 시민을 위한 가벼운 체험투어쯤으로 짐작했다. 그래서 '찾아주신 분들이 재미있는 체험(?)을 통해 연극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지'라는 가벼운 생각에 제안에 응했다.
그런데 웬걸, 오픈스튜디오 당일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손을 덥석 잡는 한 손님의 말인즉, 꼭 한번 나와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단다. 그간 여기저기 실렸던 인터뷰 등을 다 기억하며 읊어대는데, 왠지 모를 민망함과 함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두 시간가량의 오픈 스튜디오 역시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연극이라는 예술장르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던 손님들은 현시대의 연극에 대해 꽤나 심도있고 본질적인 질문들을 제기했다.
그 가운데에는 "이러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루는 연극이 있는가", "대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다룬 연극이 있었나" 등과 같은 질문도 있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성심껏 답변을 하고 또 거기에 대해 다시 되돌아오는 질문을 받고, 거기에 더해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주고받는 과정은 참으로 즐거웠다.
이런 질문은 연극과 시대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시차'에 대한 아쉬움의 이야기로 깊어졌다. '연극은 시대정신이다'라는 글귀는 연극인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회자되는 문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연극은 여타 예술 장르에 비해 시대변화에 대한 반응이 꽤 느린 장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작과정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다. 어떤 장르의 예술이든 창작자의 생각이 무르익고 그것이 창작물로 옮겨지기까지에는 시간과 수고가 따른다. 하지만 연극은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시간이 좀 더 요구되는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한편의 글이나 그림은 작가의 관념 속에서 종이 위로 혹은 캔버스 위로 옮겨지면 그로써 완결된다. 하지만 연극은 그런 똑같은 과정을 거쳐 한편의 텍스트가 산출돼야 하고, 이를 무대화할 배우와 스텝들이 모여 연습이라는, 이해와 체화를 위한 물리적 시간을 추가로 가져야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야기를 나누던 손님들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낭독극'이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게 아니겠는가. 사실 나는 그간 '낭독극'이라는 공연 형식의 의의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편이었다. 손님에게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것 같은 재미는 줄 수 있겠으나, 그럼 라디오 드라마를 하면 그만이지 굳이 손님을 같은 공간에 두고 공연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었다.
또 이와 관련해 더 이상의 생각을 진전시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처음 만난 손님들이 던져준 화두가 내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셈이다.
가끔 온갖 잡다한 이유에서 연극하며 사는 내 삶을 힘들다 투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을, 혹은 예술을 삶과 유리된 무언가로 경원시하지 않고, 관심있게 지켜보며 함께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다시 한번 힘과 용기를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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