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국 지음/ 서해문집 펴냄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가 1천 년에 이르는 중세사회의 단면들을 에세이로 써낸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가 서해문집에서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저자가 일간지에 매달 연재했던 칼럼을 모았다. 다채롭고 역동적인 서양의 중세 문화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적잖다.
한때 전쟁,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건 불법비디오라는 말이 있었으나 중세에도 전염병보다 무서운 건 가짜뉴스였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한번 맛들인 가짜뉴스는 알고리즘이라는 체계적 유인 고리를 불러오고, 종국에는 확증편향으로 공고해진 편협한 신념이 자리잡는 수순이 어째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때 가장 비이성적인 접근 방식은 신의 징벌이라는 주장들이었다. 심지어는 성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걸린다는 주장이 있었다. 회개하러 순례를 떠나는 이들이 늘었고 극단적으로는 온몸에 채찍질을 하며 여러 곳을 순회하는 고행 행렬도 줄을 이었다. 정말이지 병을 더 퍼트린 무지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일을 하는 거라며, 대의를 위한 거라며 단체로 거리에 나서거나 코로나19가 두렵지 않다며 대중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멈추지 않는 마녀사냥은 비단 16세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1486년 출간된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라는 마녀사냥 안내서가 있었다. 수도원 수도사들이 쓴, 마녀를 색출하고 고문하는 법을 다룬 책이었다.
장르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마녀들의 엽기적인 환락파티는 조앤 롤링이 당대에 살았다 해도 표현해내지 못할 상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장르소설이 아닌 학술서로 100년 넘게, 1600년까지 28판을 찍을 정도였다는 대목에서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올해로 서거 700주년이 된 단테의 사후세계 여행기 '신곡' 속 '연옥'이 중세 최고의 발명이었고, 지옥의 존재를 이용해 종교가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는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흥미로운 시선도 있다. 설교자들을 중세의 아이돌로 본 것이다.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 설교는 평신도들에게 교리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핵심 수단이었다. 그러나 라틴어로 설교했기에 일반인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이에 탁발 수도사들이 대중 설교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생동감있는 문장과 구체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대중을 즐겁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내기 전에도 '지중해 교역은 유럽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중세 해상제국 베네치아' 등 중세의 갖가지 모습을 책으로 써낸 바 있다. 22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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