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0%를 향하여

입력 2021-12-04 06:30:00 수정 2021-12-04 06:37:06

서이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소설집
소설집 '0%를 향하여'를 펴낸 작가 서이제. 문학과지성사 제공
0%를 향하여 / 서이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0%를 향하여 / 서이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9월 소설집 '0%를 향하여'를 내놓은 서이제 작가가 민음사가 주최하는 제45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지난 1년간 발표된 첫 소설집을 대상으로 하기에 신인들의 잔치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등단 이후 첫 소설집을 내기까지 20년이 지난 이도 있다. 서 작가는 2018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의 작가상 심사위원단은 "독특한 유머 감각과 리듬감 있는 문장, 작품마다 형식과 어조를 달리하는 다양성 등의 장점이 돋보이는 소설집"이라며 "자기혐오에 빠져드는 듯하면서도 삶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불투명한 미래에 좌절하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계속 걸어나가는 서이제표 인물들은 오늘날 '젊음'의 가장 생생한 얼굴이다"고 평가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 '0%를 향하여'를 비롯한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렸다. 표제작 '0%를 향하여'는 올해 초 문학동네가 주최하는 제12회 젊은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대상을 받은 전하영 작가와 함께 조명되곤 했는데 영화 시나리오를 썼거나, 영화를 전공했던 이들이 문단으로 진입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201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자 김혜지 작가도 오랜 기간 영화판에 있던 이였다.

장편 독립영화
장편 독립영화 '희수'의 한 장면.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제공

단편 '0%를 향하여'는 독립영화에 미친, 예술 뽕을 맞은 이들의 이야기다. 1천만 관객 영화가 1년에 다섯 편이나 나왔던 2019년이 배경이다. 풍요로 가득한 '한국 영화 100주년'의 해에 독립영화는 전체 관객 점유율의 1%였다.

관객 점유율 '0%'를 향해 돌진한다는 독립영화의 현실을 자조와 연민으로 뒤덮는 듯한 조롱 섞인 제목이지만 음울하지 않다.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며, 삼미슈퍼스타즈를 응원했던 1982~1985년의 인천지역 어린이들을 동정했긴 했지만, 프로야구를 고발하는 소설로 읽지 않았던 것과 같다.

'0%를 향하여'의 인물들은 독립영화의 현실을 알고도 뛰어든다. "영화를 통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이들은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객 생각은 하지 않고 '예술 뽕'만 차올라 만든 이기적인 것이며 어차피 독립영화는 안 된다"면서 '돔황차'('도망쳐'를 나타내는 신조어)를 설파한다. 마치 금단의 영역인 양 언급되지 않던 것들도 작가는 사이다 발언처럼 질러버린다.

"동기의 영화를 보러, 선배나 후배의 영화를 보러, 다른 대학 친구들의 영화를 보러, 일하다가 만난 지인이나 어쩌다가 만난 지인의 영화를 보러, 건너 알게 된 사람의 영화를 보러. 누군가는 '자기들끼리' 찍고, '자기들끼리' 보고, '자기들끼리' 해먹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자기들끼리'라도 안 보면, 정말로 독립영화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오오극장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오오극장 제공
오오극장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오오극장 제공

소설에는 대구의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도 등장한다. 55석의 좌석을 갖춘 작은 극장이고, 매년 여름이면 대구단편영화제가 이곳에서 열린다는 리얼리티 100%의 팩트도 소설의 일부로 실렸다. PPL과 무관하지만 스치듯 등장하는 공간은 꽤나 여운을 남기는데 문진영 작가의 단편 '두 개의 방'에 언급된 춘천 피카디리극장도 그랬다. 술산책하며 사라진 극장 주변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뇌리에 자리하는 것이다.

표제작인 단편 '0%를 향하여'가 소설집의 대표인 것 같지만 읽어보면 알게 된다. "스타는 피날레"라며 '0%를 향하여'가 마지막에 실린 것인지 모르나, 무게감은 단연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으로 가 있다.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은 필름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의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겪은 이야기를 촬영하듯 그린다, 아니 '편집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불타버린 필름이 많아 살아남은 필름들을 연결해서 편집하다보니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는 건 소설의 전개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술을 먹고 필름이 끊기는 주인공의 기억을 기워 연결하며 편집하는 것도 흥미로운 전개를 돕는다. 소제목이 '5-1'로 시작하는데 '1-2'이 중간에 끼어있거나 '7-2'가 별안간 튀어나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서이제 작가가 문장웹진 3월호에 발표한 단편
서이제 작가가 문장웹진 3월호에 발표한 단편 '낮은 해상도로부터'의 일부. 문장웹진 제공

이 소설집의 특이점은 별난 표현이 많다는 거다. 단편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보이는 소제목은 노래가 담긴 앨범을 글을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재생 버튼(▶), 멈춤(■), 빨리감기(▶▶)를 이야기 전개에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독자도 이게 어떤 뜻인지 원활하게 수용할 수 있다.

또, 소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종결형(나도 예전부터 좀 알고 있었음. 쿨한 느낌) 사용은 약과다. 사물의 모양을 글로 쓴 것도 있다. 단편 '임시스케치선'에서는 모자 모양으로 글을 썼는데, 이런 시도는 소설집에 실리지 않았지만 작가가 문장웹진 3월호에 발표한 단편 '낮은 해상도로부터'에도 있다. 얼굴 윤곽을 써, 아니 그려놓기도 했다. 384쪽.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