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숙수가 피나무 안반만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다. 재주가 모자란 사람이 제 능력 부족한 줄 모르고 도구가 시원찮다며 탓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안반(案盤)은 떡을 칠 때 쓰는 받침대다.
22일 한 종편 채널 주최로 열린 '글로벌 리더스 포럼'에서 연출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연설 침묵' 해프닝은 피나무 안반이 화근이었다. 사전 협의한 프롬프터(자막 노출기) 작동 문제로 윤 후보가 2분 가까이 뻘쭘하니 연단에 서 있자 지켜보는 이들이 영문을 모른 채 웅성거렸다. 앞서 프롬프터 없이 10분간 정책 소신을 능숙하게 밝힌 이재명 후보와 묘한 대조를 이룬 것이다.
'2분 침묵'은 바로 후보 자질 공방으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국가 최고 책임자 자리에 자격 미달의 '서툰 숙수'가 웬 말이냐는 조롱이 여당 측에서 빗발쳤다. 이에 윤 후보 측이 "프롬프터 없이 진행하는 자리였으면 원고 없이 연설했을 것"이라며 변명했으나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제1야당 후보가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대중의 의구심만 키운 꼴이다. 아무리 주최 측의 기술적 실수라 하더라도 뒷맛이 쓰다.
더욱이 윤 후보는 대선 정치판에 뛰어들자마자 '1일 1망언' 꼬리표가 줄곧 붙어다녔다. '벌망'(입만 벌리면 망언) 신조어까지 생길 만큼 구설이 많았다. 경선 토론회나 인터뷰에서 "집이 없어 주택청약통장 만들어 보지 못했다" "게임 개발하려면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해야"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 "손발 쓰는 노동은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의 발언으로 수차례 논란을 불렀다.
이날 윤 후보가 연설을 안 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정작 국가 미래 비전을 거침없이 풀어내야 할 자리에서 잠시라도 장승 신세가 된 것은 시사점이 많다. '프롬프터 없이 연설한 이재명이 이상하다'는 되치기로 웃고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인재 등용의 오랜 기준인 '신언서판'이 절대 요소는 아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품인(品人)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윤 후보는 아홉 번의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성공한 인물이다. 그런데 대권 후보는 그만큼 기회가 흔치 않다. 아무리 정치 경력이 짧아도 리더(Leader)가 아닌 리더(Reader)의 이미지가 유권자에 각인된다면 입지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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