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작자 미상/ 송성욱 옮김/ 민음사 펴냄/ 2016년
나는 '소설을 뭐 하러 읽냐'고 여기던 부류의 한 사람이었다. 살아가는데 어떠한 이익도 주지 않고 실생활을 떠난 허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어든 한 권의 소설이 이러한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 책 제목은 우리가 익히 들어본 고전 '춘향전'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소설이 사람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때로는 타자의 감정도 엿보며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도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삶이 익숙해질수록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보기 힘들다. 마치 나이가 들수록 돋보기없이 가까운 물체를 보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춘향전'은 무수한 판소리꾼이 공연을 해가며 교정을 거친 판소리계 소설이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 쓰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판소리로 공연되다 문자화된 작품으로 이본이 무려 15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과연 어떤 이본을 선택해서 읽어야 할까.
'춘향전'의 이본은 크게 별춘향전 계열과 남원고사 계열로 나뉜다. 두 가지 계열의 춘향전 내에서도 각기 분량이 다른 필사본과 목판본이 있다. 목판본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 출판했느냐, 판소리의 고장인 전주에서 출판했느냐에 따라 경판본과 완판본으로 나뉜다. 이 중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 84장 본과 경판본 '춘향전' 30장 본이 문학성에서 대표적인 이본으로 평가받는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춘향과 이 도령 둘 다 피끓는 이팔청춘이다. 지금으로 보면 16세니까 사춘기 학생일 나이이다. 두 청춘이 첫날밤 나눈 사랑 놀음에서 유명한 '사랑가'가 탄생했다. 사랑이라는 맹목적 감정을 강조하기 위한 판소리꾼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지만, 원문을 읽어보면 그야말로 노골적인 애정행각이다.
양반 신분의 이 도령이 기생 집안 춘향과 백년가약을 맺고 서로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그 당시 신분제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지만 이런 허구의 세계에서나마 신분 상승의 꿈을 꾸도록 민중의 욕망을 자극했을 것이다.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를 보자."(59쪽)
'춘향전'이 동양의 대표적 고전이라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히 남녀의 애정 문제를 넘어서는 다차원적인 서사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부터 처절한 고난 극복, 복수와 응징이라는 반전까지 담겨있다. 시대를 관통하여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흥행 요소이다.
이런 요소들은 신기하게도 수 천 년의 서양 고전 서사시 '오뒷세이아'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동서양의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비교하며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판소리로 시작된 춘향의 이야기는 현대에 와서는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로 변환돼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소설이 가진 묘미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먼저 원전 '춘향전'을 펼쳐보길 권한다.
배태만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