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작품을 통해 동양철학의 치유와 명상의 사유세계를 보여준 김창열, 한국 현대미술의 대부로 평가받는 박서보, 독창적 배압법으로 고요함과 추상적 리듬의 조화를 이룬 하종현.
이들 3인은 한국 화단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블루칩 작가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구 쇼움갤러리는 최근 전시공간을 새롭게 단장하고 그 첫 전시로 '현대미술, 3인의 시선'전을 활짝 열고 이들 3인의 대작을 포함한 20여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각기 다른 형식의 언어와 기법으로 한국 미술을 대표하고 있는 3인의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고 김창열 화백은 1950년대 중반부터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미술경향인 앵포르멜 운동의 한국 창시를 도왔다. 그러던 중 1969년 파리에 정착한 작가는 재료 살 돈을 아끼려 캔버스 뒷면을 물에 적셔 묵힌 후 물감을 떼어 또 그리는 식으로 재활용하던 어느 날, 캔버스에 맺힌 영롱한 물방울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마침내 1972년 물방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 화백은 이후 한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이 투명하게 떠있는 1989년작 '회귀'를 보여주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부터 작가는 구슬처럼 영롱한 물방울을 동양 정신이 담긴 천자문과 교차시키면서 종종 작품을 변형, 평생의 모티브로 삼았다.
때로는 극사실과 재현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실적으로 그려진 물방울은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서 균형이라는 개념'을 품으면서 폭넓은 화면이 변주곡을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박서보 화백은 국내에 주로 머물면서 가장 동양적인 예술행위로 작품을 창조한 작가이다. 작가는 예술행위와 사유방식에 철저했다. 그는 '묘법'(描法)이라는 창작행위를 통해 연필이나 철필로 선과 획을 긋는 반복적 행위로 무위자연의 이념을 드러냈고, 1980년대 이후 종이 대신 한지를 이용해 선 긋기를 반복함으로써 화법의 통합된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 묘법 시리즈의 회화는 화가의 행위성이 끝나면서 작품도 종결된다는 서구의 방법론을 넘어 그 위에 시간이 개입됨으로써 변화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완성에 이른다는 동양 회화의 세계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부터 무려 40여 년 동안 '접합'시리즈에 천착해온 하종현 화백은 박서보 화백과는 전혀 다른 기법과 정신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접합'시리즈는 물감을 마대의 뒷면에서 앞면으로 밀어내어(배압법) 물감과 마대라는 물질들이 자아내는 표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캔버스 뒷면에서 안료를 성긴 마대 틈으로 밀어 넣고 흘러나온 안료를 앞면에서 손이나 나이프로 물감을 누르는 이 방식은 전통 인물화의 배채법에 비유된 강한 물성을 드러낸 작품들이다. 이런 작업은 보편적으로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칠하는 게 회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던 개념을 하종현 화백이 뒤집은 셈이다. 작가에게 '접합'은 말 그대로 물질과 작가 자신의 접합이며 작품의 객체와 작가 인격의 일체화이다.
굵고 튼튼하게 짠 사각의 틀에 거친 마대를 팽팽하게 당겨 부착하고 뒷면에서 유성 물감을 밀어 넣는 하종현의 이 방식은 한국 전통 한옥 공법과 닮아있다는 점은 그의 작품을 바로보는 관전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이들 세 작가는 기법과 작가정신, 표현양식의 특성으로 인해 한국 현대미술을 대변한다"면서 "이들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이 가을의 눈이호사"라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31일(금)까지. 문의 010-3543-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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