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티데스라는 고대 그리스 정치가가 있었다. 마라톤 전투 승리 등 많은 공을 쌓아 아테네 시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지만 도편추방제에 의해 쫓겨난 인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도편추방 투표날, 한 아테네 시민이 아리스티데스에게 물었다. "글자를 몰라서 그런데 아리스티데스 이름 좀 써줄 수 있겠소?" 아리스티데스가 되물었다. "그 사람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소?" "아니오. 그를 칭찬하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 진저리가 나서요." 아리스티데스는 두말 않고 자신의 이름을 써주었다. 그러고는 국외로 추방됐다.
동서고금의 선거는 인기 있는 사람 뽑기, 즉 포지티브 방식이다. 네거티브 방식은 아테네의 도편추방제가 거의 유일하다. 독재자의 등장을 미연에 막기 위해 아테네인들은 도편추방제를 실시했다. 일종의 역인기투표다. 하지만 도편추방제는 정적 제거 수단으로 곧잘 악용되면서 나중에 폐지됐다.
이제 5개월 후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다. 그런데 표를 줄 만한 사람이 안 보인다는 국민들이 많다. 이런 국민 정서는 한국갤럽이 지난달 14~16일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호감 여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이재명 호감 34% 비호감 58%, 윤석열 호감 30% 비호감 60%, 홍준표 호감 28% 비호감 64%.
여야 대선 유력주자 3명 모두 비호감이 호감보다 두 배 정도 높다. 역대 대선에서 유력 대권주자의 호감도가 비호감도보다 낮은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이번 같은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상상 회로를 돌려본다. 역인기투표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 잘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뽑혀서 안 될 사람은 확실히 안다. 이런 민심을 반영하는 투표가 가능할까. 이를테면 투표용지에 반대표란을 만든다. 찬성표 수에 반대표 수를 뺀 순찬성표 수로 당선자를 결정한다.
물론 이런 투표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도 없고 도입할 나라도 없을 것이다. 압도적 다수 국민 마음을 얻는 후보가 아직 보이지 않길래 해 보는 흰소리다. 그래도 투표는 포기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때로는 최선(最善)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선거다. 정치적 무관심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의 지배를 받는 비극을 낳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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