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강희필 씨 부친 故 강문식 씨

입력 2021-10-07 15:30:00

아버지 강문식(오른쪽) 씨와 어머니가 강희필(가운데) 씨의 신학교 졸업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가족제공.
아버지 강문식(오른쪽) 씨와 어머니가 강희필(가운데) 씨의 신학교 졸업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가족제공.

그리운 아버지

잠깐 꿈속에서나마 얼굴을 뵐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만 사무쳐 옵니다.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신지가 벌써 16년이 됩니다. 제가 마흔 살이 채 안 되어 철이 없어 제대로 효도도 못 해보고 떠나보내 안타깝습니다.
내 어릴 적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이 과묵하고 엄격해서 하고 싶은 모든 말은 엄마를 통해 아버지께 전하곤 했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그 과묵하심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고모가 들려주신 이야기 속에서 한 이불속에 잠자고 있던 세 형제가 모두 홍역으로 열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6남매 중 큰아버지, 아버지, 고모만 남았고 그 후 6.25가 일어나고 큰아버지는 참전용사로 한 부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 생사도 알지 못한 채 떠나셨다는 것. 그 시절의 아픔을 차마 가슴에 담아둘 수 없어서 그렇게 큰 바위를 가슴에 안고 사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전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이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논밭 일구고 2남 6녀를 키우며 가르치며 평생을 사시느라 얼마나 삶이 버거우셨을까요? 어느 여름날 큰 홍수가 일어 논에 물이 가득 넘쳐나고 논둑이 터져 밀려오는 흙을 몸으로 지탱하며 논을 지키느라 폭우 속에도 동분서주 하실 때, 버스 길도 무너져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때 다른 집 부모님들은 다 마중을 나왔는데 나만 덩그러니 있다고 철없는 막내딸은 투덜투덜 불만을 터뜨렸지요.

강희필 씨 막내동생의 임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강문식(왼쪽 두번째) 씨와 가족들. 가족제공.
강희필 씨 막내동생의 임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강문식(왼쪽 두번째) 씨와 가족들. 가족제공.

척박한 살림, 장남의 무거운 짐. 그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중독이 될 만큼 퍼마시는 아버지를 전 이해를 못 했었지요. 그래서 그 좋아하시는 술을 제 손으로 사드리지 못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후회됩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의 부모님들이 거의 그렇듯 엄격하셨고 표현이 없으셔서 아버지 대하기가 늘 어려웠습니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가 나를 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닌가 얕은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뒤돌아보면 아버지는 아버지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여름날 풀을 베어오시던 지게 위에는 늘 산딸기가 놓여있었습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아궁이 속에 갓 구워 놓은 따끈따끈한 감자나 고구마를 내밀던 아버지. 신학 공부를 하겠다던 딸을 이해 못 하겠다며 그렇게 반대를 하셨던 아버지이셨지만, 새벽예배 알람을 맞춰놓고도 못 일어나는 딸을 교회 가라고 깨워주시던 분입니다. 신학교 졸업식이 있던 그 날 교회 목사님, 사모님, 청년들이 축하하러 많이 왔었는데 그날 중앙공원 옆에 있었던 한정식에 모두 데려가 점심을 사주셨죠. 자식들한테는 그렇게 표현에 서툴렀던 분이 손자, 손녀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을 등에 업고 동네까지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적잖게 놀랬던 게 생각이 납니다.

비가 오면 아버지 생각이 더 간절히 떠오릅니다.70세 때 당뇨의 합병증인 뇌경색으로 쓰러지시며 또 약간의 치매 증상도 있었지요. 전 그때 병시중을 든다고 병원에 있을 때 낙상 주의를 필요로 하는 아버지인데도 잠시 가만 안 계시며 병실 복도를 한두 시간 뺑뺑 도시는 아버지를 감당하지 못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무렵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예배 드렸던 아버지!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저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겠지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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