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에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봉평에서 대화장으로
허생원이 조선달, 동이와 밤새 걷던 그날처럼
이곳 산자락도 온통 메밀밭이어서
한창 흐드러진 꽃이 밤이슬에 취한 듯이
차오르는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달이 너무 밝은 까닭에
그때 동이가 뒤따르던 그 오솔길처럼
붉은 대궁이 환한 그림자도 드리웠습니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마냥, 먼 데서 소쩍새가
소쩍소쩍 밤을 새워 메밀밭께로 흘러듭니다.
'擧鞭先入畵圖中(거편선입화도중)'
'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도산에서 청량을 예던 퇴계가 푹 빠져 든 바로 그곳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맹개마을.
오늘 밤엔 또 누가 찾아들어 등불을 밝히시나요.
휘두른 산, 휘도는 강 언저리에 자리한 '소목화당'.
쓰나미 같은 IT사업 10년에, 쓸려나간 몸을 쉬게 하자며
박성호·김선영 부부가 둥지 튼 육지 속 섬 마을.
꽃이 벌과 나비를 부르듯 밀(소)·메밀(목)·목화(화)로
지친 이웃을 부르겠다며 지은 집(당)이랍니다.
봄엔 밀 내음, 여름이면 아련한 이효석의 '추억꽃'이,
그 옛날 목화는 겨울 함박 눈송이로 피어납니다.
트랙터로 강을 건너는 오지도 마다 않고 달려와
물·바람·새 소리에 구름에 달 가듯 메밀꽃과 노닐며
잔뜩 쌓은 마음을 털고 새로고침하는 도시 사람들….
친환경, 유기농, 경관농으로 자연과 살겠다며
꽃과 놀다 밀향에 취해 '맹개술도가'도 차렸습니다.
통밀로 담근 술을 증류해 손수 빚은 진맥소주.
알고보니 1540년 김유의 요리책 '수은잡방'에도 오른,
1700년까지 맥을 잇던 안동 제일 전통주였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 소금을 뿌린 듯한 그 광경을
꼭 확인해 보겠다고 벼르고 찾은 맹개마을.
자정이 가깝도록 구름도 달을 비켜갔습니다.
달빛은 흐뭇했고 밭엔 하얀 소금이 빛났습니다.
e북으로 다시 본 그의 글이 참말로 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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