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21년
"어떤 목표가 있다는 것이 괴로움의 원인이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번뇌의 이유가 아닌가, 그는 뜨거운 모래에 발을 담그며 깨달았다. 하나의 목표는 곧 하나의 욕심으로 번지고, 욕심은 번뇌를 낳는 게 아닌가."(118쪽)
불안과 강박은 현대인의 필수 아이템이다. 완성과 완벽주의에 대한 갈망 또한 현대인들의 숙제다. 백가흠의 6년 만의 신작인 단편 소설집 '같았다'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공포, 욕심, 고민, 반성, 근원의 이야기들이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은 슬픔과 기괴함을 넘어 '위안'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또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같은 사회인으로서 동병상련의 느낌이 든다.
소설 속 상상력의 묘사가 놀랍다. 주인공들이 모두 각각 다른 시공간에 있는데도 마치 각각의 이야기 속 그곳에 있는 것처럼, 그곳의 시공간이 느껴지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또 각 단편의 뒷부분에 예상치 못했던 반전도 묘미다. 불편한 이야기들도 있을 수 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쓴다는 점도 흥미롭다.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귀뚜라미가 온다', '마담뺑덕', '그리스는 달랐다' 등 여러 소설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훔쳐드립니다'는 대학 강사와 도둑,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도둑질에 대한 불안과 강박적 상황을 해학적으로 풀었다. '1983'은 1983년에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 간 프랜시스 스펜서, 한국 이름은 조팔삼이 일구와 함께 가족을 찾아 떠나지만, 자신의 근원적인 가족과 고향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음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 집'은 능력없는 아버지와 형 사이에서 조용히 자신의 안식을 취하던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과 만나며 가족의 새로운 모습과 그 집의 본질을 알게 된다.
'타클라마칸'은 일문이라는 스님이 일본 망우타거산에서 토굴을 파고, 기도를 드리고 하며 깨달음을 얻으려 노력했으나 아르파한과 함께 사랑을 향해 떠나게 된다. '같았다'는 남편 때문에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린 여자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을 때마다 도둑을 만나고, 도둑이 남편을 대신 죽여주는 이야기다. 「나를 데려다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자꾸 하나둘씩 사라지고,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이 우리 집 화분에서 나오는 서스펜스적인 이야기다.
'어제의 너를 깨워'는 죽은 사람의 소리는 듣는 은자의 직업을 가진 태호의 이야기이다. 또 '그는 쓰다'는 소설가의 삶을, '코로 우는 남자'는 딸이 죽고, 딸의 사랑을 느끼며 후회하는 남자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모두 독특하다.
대구문학관에서 주최했던 낭독콘서트에서 백가흠 작가를 만났다. 전투적인 책과는 달리 삶과 글, 상상에 대해 매우 진중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서로 일중독이며 워라밸이 지켜지지 않는 아쉬움을 눈치 챘던 것 같다. 삶은 쉽지 않고, 쉬이 쉴 수가 없다. 백가흠의 소설 '같았다'는 나와 같은 강박증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잠시나마 쉼을 준다. 주인공들을 만나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소설이라는 위안을 얻는다.
이은영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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