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팔' 최동원은 있고, '타격 달인' 장효조는 없다?

입력 2021-09-01 15:28:56 수정 2021-09-01 18:23:57

한국 프로야구 '영원한 별' 장효조·최동원 10주기…되돌아봐야 할 KBO리그
최동원…롯데서 늦게나마 영구결번, 사직구장에 선수상 세우고 매년 추모식
장효조…영구결번, 추모 동상도 없이 잊혀져가 "프로야구史 가볍게 여기는 꼴"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을 치는 타자 장효조와 무쇠 팔 최동원을 기억하십니까.'

한국프로야구계를 호령했던 장효조와 최동원. 두 전설이 별이 된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2011년 9월 7일 장효조가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 일주일 후인 14일 최동원도 53세의 일기를 끝으로 눈을 감았다.

출범 40년을 맞이한 한국프로야구 초창기를 이끌었던 이 두 전설은 선수로서 활약상뿐만 아니라 국내 리그 발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장효조는 '타격 달인'으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선수였다. '안타 제조기', '영원한 3할 타자' 등 수식어를 달고 그가 세운 1985년부터 1987년까지 3년 연속 타격왕, 선수 시절 8번이 넘는 3할대 타율, 0.331라는 통산 타율(3천 타석 이상 기준) 기록은 지금까지도 불멸로 남아있다.

최동원 역시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5차례 나와 4승을 올리는 등 앞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을 기록을 썼다. 특히 불이익을 무릅쓰고 '선수협' 결성을 주도하며 선수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삼성라이온즈와 롯데자이언츠, 각각의 원년 멤버였던 장효조와 최동원은 1988년 시즌이 끝난 후 삼성과 롯데간의 2차례 트레이드를 통해 서로 유니폼을 바꿔입기도 했었다.

선수 생활 은퇴 후, 장효조는 2009년 삼성의 2군 수석코치 겸 타격코치로 복귀한 후 2군 감독직을 맡았고 최동원 역시 한화이글스에서 2군 감독직을 수행했었다.

오랜 야구팬들이라면 이들의 활약상을 기억할 지 모르지만 어느덧 그 추억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나마 최동원은 부산 사직구장에 선수상이 세워지고 추모식이 열리고 있지만 장효조를 추모하고 그를 기억하기 위한 상징은 없다.

2016년 대구시민운동장에서 현재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로 야구장이 옮겨질 당시 장효조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흉상 건립 제안도 나왔지만 대구시와 삼성 구단에서는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프로야구 OB모임인 사단법인 일구회도 이런 안타까움을 한탄했다. 일구회는 1일 장효조, 최동원의 10주기 추도사를 통해 "야구를 사랑했던 두 전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지금의 야구팬이 두 분에 관해 얼마큼 알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 이 순간의 활약과 숫자만 주목하다보니 유니폼을 벗는 순간 어느 선수나 잊혀만 간다. 야구 관계자들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과거와 현재를 이어갈 수 있는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최근 KBO리그는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 승부조작 연루, 음주운전 등 갖가지 문제들로 시름하고 있다. 야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리그에 대한 실망감도 커져가고 있다.

장효조는 선수 시절 '독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하며 자신을 단련했다. 최동원 역시 현재라면 말도 안되는 투수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단 한번도 전력을 다하지않은 적이 없었다.

한 야구팬은 "심지어 삼성은 고 장효조 (2군)감독에 대해 추모 동상은커녕 영구결번 지정 소식도 없다"며 "이는 삼성 구단의 역사, 프로야구사를 스스로 가볍게 여기는 꼴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