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엄마가 생각난다는 노래 가사가 내겐 탐스럽게 열리는 복숭아 철이 되면 눈물겹도록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아버지는 치아가 좋지 않으셔서 여느 과일보다도 황도 복숭아를 좋아하시고 즐겨 드셨다. 또 고향이 복숭아가 많이 나는 청도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해에도 복숭아가 드시고 싶다며 막내딸보고 복숭아 사서 오너라 꼭 경이가 사다 주는 거 먹고 싶다고 하셨는데...
예~예~대답만 하며 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 그래서 돌아가신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복숭아를 먹지 못한다. 복숭아가 드시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당신이 돌아가실 줄 아셨는지 지방(김천)에 사는 막내딸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어 그런 말씀 하셨는데... 사는게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 찾아뵙는걸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철없고 미련한 이 여식은 그때는... 그때는,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까짓 거 복숭아 한봉지 사 들고 대구에 계시는 아버지 한 번 뵈러 가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휴 ~ 왜 그랬을까요. 평생 아버지께 죄인이 되었습니다. 아부지 그때는 저도 정말 너무 사는 환경이 힘이 들었어요. 이 서방 병원에 있다고 아버지가 아시면 너무 마음 아파하실까 봐 차마 아버지께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숨겼답니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일찍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가 두 언니와 저를 키우셨지요. 두 언니는 어느 정도 성장을 한 이후라 아부지는 우리 막내딸 경이가 제일 불쌍하다며 늘 안쓰러운 눈빛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신 아버지께 저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죠.
남자 나이 44세면 충분히 재혼하셔도 될 터였지만 우리 딸들 마음고생 안 시킨다고 재혼도 하지 않으신 것 다 알아요. 겉으론 무뚝뚝하신 것 같지만 속정이 깊으셨던 우리 아버지! 종일 힘든 일 하시고 발이 퉁퉁 부어 퇴근하시는 날이면 마루에 앉으시라 하고 대야에 따뜻한 물 받아서 아버지 발을 뽀드득뽀드득 씻겨 드리면 너무 좋아하셨죠.
"어이쿠~ 시원하다. 우리 경이가 최고다" 그렇게 말씀하시곤 언니들 모르게 용돈도 쥐여 주시곤 하셨지요. 그때는 용돈 받는 재미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며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 종종 아버지 발을 씻겨 드렸어요.
아버지! 지금은 그때처럼 해드리고 싶어도 아버지가 너무 멀리 계셔서 해 드릴 수가 없네요. 이 막내딸도 어느덧 60을 눈앞에 두고 있네요.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를 뵙게 되면 그때도 이 막내 딸이 아버지 발 깨끗하게 씻겨 드릴게요. 좀 더 오래 사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빨리도 떠나셨어요.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죠. "나는 아들도 없고 딸만 있는데 너희들 고생 안 시키고 딱 70살까지만 살다가 갈끼다. 오래 살면 너희들만 애먹인다." 말이 씨가 된다고 아버지는 정말 70세 되든 해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복숭아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시면 언제라도 금방 아버지한테 사서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아버지는 떠나시고 안 계시네요. 부모는 자식이 효도할 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힙니다. 결혼식 마치고 비디오테이프를 찾아서 돌려보다가 결혼식장 구석 한켠에서 눈물을 훔치고 계시던 아부지 모습이 찍혀 있어 그걸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우리들 앞에선 눈물 한번 보인 적이 없으셨던 강인한 아버지께서 막내딸 시집 보내며 서운해서 울고 계셨다니... 못난 막내딸이 아부지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띄웁니다.
좋은 곳에서 평안히 쉬시며 생전에 예뻐하시던 막내딸 미경이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 지켜봐 주세요.
아부지 사랑합니다. 너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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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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