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나의 삶] 화가 변미영

입력 2020-03-08 06:30:00 수정 2020-12-14 15:24:41

"힘든 시기 노장사상 만난 후 山水 그렸죠"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자리한 화실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변미영 작가.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자리한 화실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변미영 작가.

변미영 작
변미영 작 '유산수'

"예술은 그 한 편 한 편이 저마다의 세계이기에 예술가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그만큼 다양한 세계를 볼 수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대구는 주지하다시피 근현대미술의 본산지로 현재 수많은 미술가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각자는 나름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갖고 그들만의 실존적 고민을 더하면서 창작의 고통과 희열을 감내하고 있다.

이에 지역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을 찾아 그들이 말하는 '나의 예술, 나의 삶'을 들어본다.

변미영(57)은 천상 화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책 읽기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학교대표로 미술실기대회를 단골로 나갔다. 1986년 계명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해에 여자 동기 9명과 함께 그룹 '형색전'을 만들어 작가의 길을 모색했으나 현재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는 변 작가 혼자뿐이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주택가에 'Studio MYB'란 간판이 걸린 집이 그녀의 작업실이다. 작가는 이곳을 매일 '칼출근'하고 '칼퇴근'한다. 전업 작가로서 나태해지기 않기 위한 스스로의 자구책이다. 작업 중인 작품들과 아크릴 물감통, 미술관련 책들이 가지런한 화실은 넓이 약 132㎡에 천장이 높다. 특이한 것은 화실에 그네가 걸려있고 캔버스는 없다는 점이다.

"여름에 더우면 작업하다 더러워진 손을 씻을 필요 없이 그네만 타면 절로 바람이 일어 시원해지죠."

인위적인 찬바람을 싫어하는 작가가 피서방법으로 설치해둔 게 그네였던 것이다.

어릴 적 재능활동을 제외하면 올해로 변미영이 본격적으로 붓을 잡은 지는 34년째. 작가는 대학졸업 후 10년만인 1996년 비로소 당시 봉성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 첫 개인전은 작가 개인의 작품 활동 중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그전까지 몇몇 단체전에 출품된 주된 작품들은 누드화였다. 이때의 누드화란 암울하고 힘든 고통의 시간들을 형상화한 것들로 화면은 온통 짙은 어두운 색이 주류를 이루며 누드화의 형상 또한 또렷하기 않은 것이 특징이다.

사실 변미영은 2000년 이전까지 정신적으로 많은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여성으로서 육아, 불안한 미래, 암울하기만 한 한국적 정치사회상황 등이 작가로 하여금 현실에 잘 적응하기 못하게 만들었고, 이상세계로의 도피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이때 탈출구로 만나게 된 사상이 바로 노자와 장자의 사유체계였고 2000년대 이후 그녀의 그림에 '산수'(山水)가 등장하게 된 이유이다.

"노자의 무위자연과 장자의 대자연이란 개념은 나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준 중요한 계기가 됐죠. 대자연은 혼란했던 나의 정신세계에 안식처를 제공했고 작가로서의 존재에 편안요람으로 다가왔죠."

작가의 초기 산수화는 주로 산의 능선 묘사와 골짜기 사이를 흘러내리는 폭포를 중심으로 단순하게 묘사된다. 그 와중에서도 물줄기가 뒤틀리는 폭포의 중간 중간은 마치 꽃잎처럼 묘사되는데 이를 두고 작가는 "그림을 그리려고 실사를 나갔는데 정말 내 눈에 폭포의 중간 중간 꺾이는 지점이 마치 막 봉오리를 터뜨리려는 꽃망울처럼 보였죠"라고 말했다.

마침내 암울했던 시간의 터널을 지나 삶과 존재에 희망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부터 작가의 산수화에는 색깔이 화려해지면서 돌과 꽃, 풀, 봉황, 왕관 등 소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2년 '낙도'(樂圖)를 타이틀로 개인전을 연 작가는 이전과 달리 나무를 소재로 돌과 같은 다양한 소재를 부착한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입체적 작업을 시도했다. '산수'시리즈의 또 다른 변신이었던 것이다.

2003년엔 다시 회화로 돌아오는데 이때부터 작품에 먹을 쓰지 않게 된다. 2005년엔 조각을 내려놓고 평면에 부조적인 표현법을 도입, 판넬화 작업을 시도하게 되면서 이른바 '산수'시리즈의 작품들은 '화산수'(花山水'2007년), '유산수'(遊山水'2010년)계열의 진화된 시리즈 작품들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작가 변미영 작품의 남다른 특징 중 하나는 위작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본인마저도 똑같은 그림을 재생산할 수 없다. 왜 그런 것일까? 이는 변미영만의 제작기법의 특수성 때문이다.

우선 판넬 위에 여러 가지 색의 물감을 차례로 쌓아올려 상당한 두께의 물감 층을 만든 후 조각칼이나 끌 혹은 송곳으로 이용해 물감 층을 긁어내면서 화면 속 대상의 형태를 그리는 그녀의 작품 제작은 도구를 쥔 손의 힘의 강도에 따라 물감 층이 다른 두께로 벗겨지면서 완성도를 더해간다. 이때 드러난 선의 형태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손에 힘을 주는 강도에 따라 선의 형태나 기저층 물감의 농도가 달라지죠."

따라서 매번 동일한 힘을 손에 가할 수 없는 까닭에 작가마저도 완전히 닮은꼴의 작품제작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제작기법으로 인해 작가의 화실엔 캔버스가 없고 평편하고 넓은 화탁(畵桌)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대자연의 상징과도 같은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그 위를 노닐 듯 나르는 왕관 쓴 봉황, 천상에서 눈처럼 흩날리는 꽃봉오리들로 구성된 변미영의 산수화는 실경이 아니다. 이 모두는 작가가 꿈꾸는 이데아적인 이상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미술사를 꿰뚫는 중요 요소 중 하나는 시대성의 반영이라면 무릇 모든 예술가는 그 시대의 자식들인 셈이다. 변미영의 산수화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예술은 사람을 감동시켜야 해요. 감동으로 사람의 정신세계를 진화시킬 수 있다면 누구나 꿈꾸는 세상을 나의 화면을 통해 드러내고 싶습니다."

천상 화가인 변미영이 매일 화실로 '칼출근 칼퇴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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