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돌

입력 2019-12-13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오랜 세월 일편단심 돌을 그려온 작가가 있다. 맑은 물속에 잠긴 조약돌을 진짜 돌보다 더 돌같이 그린 화폭에는 작가의 고향인 영덕 바닷가의 숨결이 배어 있다. 그런데 돌이 품고 있는 세월의 결마저 드러내는 작가의 필치와 색조의 궁극은 무엇일까. 이른바 '석심'(石心)이란 명제의 그 가없는 조약돌 연작 속에 숨어 있는 화가의 내면 풍경은 어떤 것일까.

그 해답은 그림 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비의 몸짓에서 찾을 수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있어 돌은 바야흐로 생명력을 얻는다. 나비를 맞고서야 돌은 작가의 그리움을 머금고 이상향으로 비상한다. 어느 날 바람처럼 황망히 사라진 나비였다. 차안(此岸)을 떠난 나비는 피안(彼岸)의 화폭에서 그렇게 날개를 편다. 그래서 '조약돌 화가' 남학호의 작품 '돌과 나비'는 불이(不二)의 세계관을 상징한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옛말이 있듯이, 자고로 '돌'에 대한 우리 정서는 귀한 편은 아니었다. 삼천리 강산에 흔해 빠진 돌이 무슨 특별한 가치가 있었을까. 게다가 '돌'자가 접두어로 붙으면 그 의미가 더 악화되기 일쑤이다. '돌X가리' '돌상놈' '돌무식' 등이 그 사례들이다. '돌쇠' '삼돌이' 등 '돌'자가 들어가는 사람의 이름도 예로부터 신분이 낮은 하인들이었다.

'돌'자는 한자로는 '乭'로 쓰는데 한국에서만 쓰는 희귀한 글자이다. '乭'자가 들어간 이름 또한 극히 드물어 구한말 영덕의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申乭石)과 오늘날의 프로바둑기사 이세돌(李世乭) 정도이다. 그런데 흔하면서도 특별한 돌이 등장했다. 이른바 '떡돌'이다. 포항에서 '떡돌'로 부르는 광물인 벤토나이트가 간암·대장염·헬리코박터·고혈압 신약 후보 물질의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동물 실험을 통과해 상업화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벤토나이트는 메디컬 점토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의 대표적 광물로,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포항에 1천만t 이상 매장돼 있다. 간암 치료제를 비롯한 5종의 신약 후보 물질이 상용화된다면 10조원 이상의 세계적 신약 시장을 열게 되는 것이다. 동해안의 평범한 돌에 아픈 이들의 염원을 보듬은 나비가 앉아 석심대작(石心大作)을 이루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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