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고래포 아이들/박남희. 아이앤북 2015

입력 2019-10-26 06:30:00

언젠간 진짜 동무가 되겠지

어른들이 끙끙대는 문제를 어린이들은 의외로 쉽게 푼다. 어린이만의 단순하고 투명한 셈법 덕분이리라. 저울질에 익숙한 어른들은 문제를 끌어안고 복잡한 셈을 두드린다. 그러다가 결국 불운만 되새김질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고래포 아이들이 풀어내는 답을 통해 불행했던 역사의 해법을 살며시 제시하는 박남희 작가가 고맙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이 동화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순희 작
정순희 작 '가을 바다'

우연한 기회에 구룡포를 여행하던 작가는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힘찬 파도 속에서 일제 강점기 일본의 포경선을 떠올렸고, 이제는 볼 수 없는 귀신고래를 마음속 깊이 품게 된다. 그 후 고래포라는 공간이 태어났고, 웅이, 기득이, 유키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920년대 고래포는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았다. 그중에 귀신고래는 고래포의 자랑이다. 오래전부터 고래는 고래포의 이웃으로서 누구도 함부로 잡지 않는다. 그러나 포경선이 들어와서 어린 고래와 새끼 밴 고래를 가리지 않고 잡는 바람에 고래 씨를 말린다. 이 일에 앞장선 사람이 고래포어업조합장인 야스다, 유키코의 아버지다.

선착장으로 집채만 한 고래가 피를 흘리며 표경선에 실려온다. 고래의 크기를 보고 야스다는 만족한 웃음을 짓지만 주민들은 제 몸이 다친 것처럼 몸서리친다. 주민들 앞에서 고래의 해체 작업이 진행된다. 배와 갈비 사이에서 하얀 젖이 흐르는 것을 본 웅이는 어미 고래임을 알고 하얗게 질린다. 고래의 지방과 뼈들이 착유장으로 옮겨지고 거기서 나온 기름이 군대에 보내진다는 이야기에 고래포 주민들은 일본군을 원망한다.

야스다는 어미 고래뿐 아니라 아기 고래도 기어이 잡으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기득이와 웅이는 유키코한테는 비밀로 하고 아기 고래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니가 아무리 유키코하고 친해도 니 마음속에는 기득이와 유키코를 구별하고 있는갑다. 유키코하고도 언젠간 진짜 동무가 되겠지."-p68

웅이 누나는 삼총사였던 유키코를 빼고 기득이하고만 의논하는 웅이를 안타까워한다. 웅이에게 유키코는 참 좋은 친구지만 야스다의 딸이라는 이유로 멀리할 수밖에 없다. 아기 고래의 행방을 유키코가 알면 야스다의 귀에 들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과 우리도 그들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 때문에 웅이와 유키코처럼 서로 좋은 친구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유키코는 웅이와 기득이가 아기 고래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간다는 걸 알고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한다. 마침내 유키코는 아버지와 살기등등한 주재소 어른들의 눈을 피해 웅이와 기득이에게 힘을 보탠다.

"나를 보면 우리 아버지가 떠오르겠지. 하지만 나는 나야. 아버지가 아니라고. 난 어릴 때나 지금이나 너희들을 대하는 마음이 같아."-p147

친구로서 변함없는 유키코의 말이 바다 건너서도 들려오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도 웅이처럼 유키코의 손을 기꺼이 잡을 수 있으리라.

노을빛이 수평선을 물들이던 날, 웅이와 유키코, 기득이가 아기 고래를 지켜내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다.

푸른 새벽별의 응원을 받으며 고래포에 선 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일본과 우리도 언젠간 진짜 동무가 되리라 믿는다.

정순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