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창의성] 2월의 나무-살구나무

입력 2019-01-30 19:30:00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교육의 목적은 피교육자들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피교육자의 창의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창의성 교육에 적합한 교육제도와 교육과정 등을 갖추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해야만 한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자와 교육 현장의 자율성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제4차 산업혁명 시대처럼 유사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환기에는 교육혁명이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은 여전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이 이 같은 위기에 처한 것은 단순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체제를 갖추지 못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현장은 개인의 힘으로 창의성 교육을 실현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태다. 현재처럼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교육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를 통제하고 있는 한 창의성 교육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우는 즐거움 창의성 출발점


세계 교육사에서 창의성 교육의 가장 우수한 사례는 중국 춘추 말 공자의 교육 방법을 들 수 있다. 공자가 2천500여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창의성 교육 덕분이다. 공자의 교육 철학은 제자들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정리한 「논어」의 첫 구절, 즉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공자의 교육철학을 드러낸 핵심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책을 엮으면서 가장 먼저 이 말을 언급한 것은 배움에서 기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움의 즐거움은 곧 창의성 교육의 시작이다.

행단(杏壇)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창의성 교육을 실시한 곳을 대표한다. 행단은 장미과의 갈잎작은키나무 살구나무가 있는 곳을 뜻한다. 현재 중국 산동성 곡부에 위치한 공부(孔府)에는 행단이 있다. 그런데 행단과 관련해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살구나무가 아닌 은행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은행나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같은 현상을 나무의 '문화 변용'이라 부른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는 수도 장안 곡강 가의 살구나무 공원에서 과거 합격자의 축하연을 베풀었다. 살구나무의 '살구'는 중국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따르면 '개를 죽인다'는 '살구'(殺狗)의 뜻이고, 조선시대 최세진의 「훈몽자회」에는 '살고'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은 '청명'에서 살구꽃을 '술집'으로, 「성경」에서는 아론의 지팡이에 피어난 살구나무 꽃을 부활과 생명으로 표현했다.

교육 위기, 공자에게 길을 묻다

살구나무는 「회남자」에서 2월의 나무로 등장한다. 중춘(仲春)인 2월의 방위는 동쪽이고, 색은 청색이다. 이 달에는 청양(靑陽)의 태묘(太廟)에서 조회를 하면서 관리를 시켜 가벼운 죄를 지은 자는 풀어주게 하고, 죄수의 손발을 묶은 족쇄를 풀어주게 하며, 볼기를 치는 형벌과 송사를 금지시키고, 고아나 자식이 없는 노인을 보살피게 했다. 살구나무를 2월의 나무로 삼은 것은 속이 비어 있는 살구씨, 즉 행인(杏仁)이 마치 음이 안에 있고 양이 밖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도 살구 씨처럼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같은 것이다. 공자는 제자들이 각각 지니고 있는 '인'이라는 종자를 드러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제자들이 공자를 존경하는 이유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공부의 기쁨은 자신의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에서 출발한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워 열매를 만드는 살구나무의 삶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한 위기의 배움과 같다. 위기의 한국 교육은 아주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살구나무의 삶에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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