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挂羊頭賣狗肉-양(羊) 대가리를 걸어놓고(挂羊頭) 개고기를 팔다(賣狗肉)

입력 2019-01-28 19:30:00 수정 2019-01-28 19:30:57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송나라의 황제 휘종(徽宗)은 1082년 개띠 해에 태어났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범치허(范致虛)라는 대신이 "폐하께서 개띠인데 지금 도성(지금의 開封)의 도처에서 개를 잡아먹고 있으니 이는 폐하의 명성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금지해야 합니다"라고 상서했다. 휘종은 범치허에게 큰 상을 내리고 전국에 개 도살 금지령을 내렸다.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엘리트 양성소인 태학(太學)의 학생들은 "황제께서 말끝마다 선친인 신종(神宗)을 본받는다고 하는데, 신종께서 자신이 쥐띠라고 해서 고양이 사육을 금지하셨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휘종을 조롱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제의 칙령인지라 백성들은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상인들은 양고기를 판다고 간판을 내걸고(挂羊頭) 암암리에 개고기를 팔았다(賣狗肉). 괘양두매구육의 유래이다. 줄여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 한다.

이 말은 일찍이 제(齊)나라의 재상 안영(안자晏子)의 언행록인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는 쇠머리를 내걸고 말고기를 판다(懸牛首於門, 而賣馬肉)는 표현으로 나온다. 겉과 속이 다르게 궁중에서는 지키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지킬 것을 강요해서는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들은 나중에 겉과 속이 다르거나, 앞에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뒤에서는 나쁜 짓을 할 때 사용되었다. 양 대가리를 걸어 놓았으면 양고기를 팔아야지 개고기를 팔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현 정권을 향해 일갈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적폐 청산을 내걸고 상대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민주, 정의를 내걸고 미국이 중동에서 하는 행동이 그들의 눈에는 양두구육으로 비칠지 모른다.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그 예이다.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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