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과 관리의 폭정을 규명한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문졸(門卒)이란 잡역에 종사하던 하급 군관으로 관청의 아전과 하인 중에서도 가장 교화에 따르지 않는 자이다'(門卒者 古之所謂皁隷也 於官屬之中 最不率敎)라고 했다. 그런데도 혼권(閽權), 장권(杖權), 옥권(獄權), 저권(邸權), 포권(捕權)을 틀어쥐고 행패가 극심했다는 것이다.
관문 통제에서부터 곤장의 경중과 죄인 관리, 세금 수령, 도둑 체포 등의 권한을 가진 문지기의 적폐를 수령된 자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니 백성들의 고초가 오죽했을까. 2019년 새해 벽두에 '문지기'라는 말이 새삼 회자하고 있는 것은 '왕실장의 귀환'이란 형용사를 달고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노영민 전 주중대사의 권력 심층부 입성 때문이다.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선 노 실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저는 사실 부족한 사람"이라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어떤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비서일 뿐"이라며 "그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단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문지기론을 방불케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인 그에게 '문지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2012년 대선 패배 후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들)라는 친문 모임을 만들어 그 좌장을 맡으면서다. 그는 2017년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의 중앙선대본부 공동 조직본부장을 맡았던 '원조 친문'이다. 대통령이 중요 정치 현안을 상의했던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 궐문을 장악했으니 또 한 사람의 '왕실장'이 등장한 셈이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를 선거 전에 걸러내는 정당의 문지기(gate keeper) 기능이 약해질 때 위험한 권력자가 나온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의 문지기 힘이 강해질 때 정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박근혜 정권의 왕실장과 문고리 3인방의 득세와 몰락을 적나라하게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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