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왕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승정원일기'

입력 2019-01-07 19:30:00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학창 시절 한 해를 시작하면서 꼭 결심하는 것이 있었다. 올해만큼은 일기를 빠짐없이 써서 내 삶의 모습을 정리해 보자는 것이었다. 518년간 존속한 조선왕조에서도 공식적인 왕실의 일기가 있었으니,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바로 그것이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出納)을 맡으면서 비서실 기능을 했던 승정원에서 날마다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날짜별로 기록한 책이다. 원래 건국 초기부터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나, 광해군 때까지 기록은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623년(인조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 288년간의 기록 3천243책이다.

초서로 쓴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탈초(脫草)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원본의 책 크기는 일률적이지는 않지만 대체로 세로 40㎝, 가로 28㎝ 정도이다.

288년에 걸친 방대한 역사 기록

288년에 걸친 기록물이라는 점과 3천243책, 총 문자량 2억4천여만 자에 달하는 분량으로 단일한 기록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역사기록물로 분류된다. 현재 조선왕조실록 번역본이 400여 책인데 비하여, 승정원일기의 번역 예상 책 수는 5천여 책으로, 그만큼 기록된 내용이 방대함을 알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역사기록물인 승정원일기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왕과 신하의 세밀한 대화까지 기록한 상세함, 빠짐없이 기록된 날씨, 1870년대 이후 대외관계 비사(秘史) 등이다.

승정원일기는 실록 편찬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왕을 최측근에서 모시는 후설(喉舌: 목구멍과 혀)의 직책에 있었던 승정원에서 이루어진 기록인 만큼 왕의 기분, 숨결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기록에 담았다. 왕이 웃거나 화를 낸 상황, 건강 상태까지 담고 있다. 영조시대 청계천 공사에 관한 내용에는 구간별 공사 현황들도 자세히 정리하고 있다.

승정원은 왕의 지시 사항이나 명령을 정부 각 기관과 외부에 전달하는 역할과 함께 왕에게 보고하는 각종 문서나 신하들의 건의 사항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 정원(政院) 또는 후원(喉院)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후'는 목구멍을 뜻하는 한자어로 승정원이 국왕의 말을 바로 대변하는 요처임을 암시한다.

승정원일기의 편찬은 승사(承史)라 칭하는 승지(承旨)와 주서(注書)가 공동으로 담당하였으며 최종 기록은 주서들에게 맡겨졌다. 승지는 무관도 임명될 수 있었으나 주서는 반드시 학문과 문장이 검증된 문관을 뽑아 임명하였다.

승정원일기는 왕과 신하들의 대화 기록이 특히 자세하며, 이들 기록에는 왕의 표정이나 감정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역대 왕들 스스로가 자신의 병세에 대해 신하들에게 이야기하고 약방이나 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한 사실과 왕의 기분과 병세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다. 왕의 언행, 기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던 철저한 기록정신이 승정원일기를 탄생시켰던 근본 요인이었다.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를 설계

승정원일기는 일성록과 더불어 일제강점 시기 일본인의 손에 의해 집필돼 정사(正史)로서 정통성이 부족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의 한계성을 보완해 주는 대체 자료로서 의미도 크다.

승정원일기와 같은 명품 일기를 남긴 조선왕조의 뛰어난 기록문화의 전통은 우리에게 과거라는 미지의 공간을 보다 정확하고 생동감 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한 해가 시작되는 지금 개인 '승정원일기'를 작성해 볼 것을 권한다. 자신이 살아온 기록을 현재의 거울로 삼아, 발전된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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