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시작은 늘 대구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2·28민주운동이 그랬습니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나랏빚을 갚자며 온 국민이 들불처럼 일어난 국권회복운동이었습니다. 십시일반 모두 힘을 모았습니다. 하루치 일당을 의연하는 사람도 있었고 제법 큰돈을 쾌척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도적과 걸인들까지도 동참하여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국채보상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경주, 서채봉, 김달준, 정말경, 최실경, 이덕수 그리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배씨까지. 모두 대구의 여성들입니다. 나라 위하는 마음은 남녀가 다르지 않다며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고 앞장서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여성 국채보상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동시에 근대여성운동의 효시가 되어 대구를 상징하는 또 하나, '시작의 역사'로 남았습니다. 현재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기록물들은 세계유네스코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1960년의 2·28민주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는 '리승만 박사! 대통령으로 모시자'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나붙던, 즉 국민이 대통령을 '모시던' 시절이었습니다. 독재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져도, 불의가 횡행하고 민주주의가 쪼그라들어도 누구 하나 말 못하고 숨죽여 살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이들이 대구의 앳된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그날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은 같은 날 수성천변에서 있을 예정이던 제4대 정부통령선거 야당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일요일임에도 학생들을 등교케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구의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당시 지역 최고의 권부였던 경북도청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의 결기가 어떠했는지는 시위를 이끌었던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군이 쓰고 읽었던 결의문의 한 부분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이들의 외침은 3·15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초, 2·28민주운동은 늦게나마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대구의 시작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섬유산업이 그랬고 IT산업이 그랬듯 나라 경제의 시작도 대구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 우리를 일으켜 세운 것은 대구의 섬유산업이었습니다. 꺼져 가던 경제의 불씨를 되살리고 대한민국을 정보통신산업의 강국으로 거듭나게 한 곳도 이곳 대구경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독립운동에서 해방 후 민주화운동, 그리고 경제부흥운동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 고비고비마다 대구만큼 결정적 역할을 한 곳도 없습니다. 모두가 막막해할 때 먼저 시작하고 새로운 길을 내어 보였습니다. 결코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았으며 언제나 용서와 화해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대구는 앞으로도 시작의 도시다워야 합니다. 기분 좋은 시작, 새로운 희망이 자꾸자꾸 생겨나는 도시, 대한민국의 청년이면 누구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하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이 대구라야 합니다.
2019년,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삶의 방식도 바뀌고 있습니다. 인류 문명이 4.0 초(超)연결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대구가 한 번 더 힘을 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늘 그랬듯 대구의 힘은 곳곳에 있습니다. 남일동의 부인처럼, 2·28의 학생처럼 서로가 서로를 북돋우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진짜 대구의 힘이 생겨납니다. 곳곳의 힘들이 모여, 곳곳의 힘들이 이어져 함께 새로운 대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물산업, 로봇산업, 의료산업, 에너지산업, 미래형자동차산업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시작의 도시는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대한민국을 리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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