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차 마시고 담소 나누는 책방의 학당
타임머신 타고 19세기 말 역사 탐험
당시 일본이 가장 자랑스럽기보다
평범한 일본인들은 아파하는 시대
책방이 바뀌고 있다. 책을 손으로 만지고 직접 구매하는 공간에서, 차도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세상을 향해 소통하는 그런 공간이 되고 있다. 경복궁 영추문 앞 '역사책방'도 그 하나다. 매주 1회 이상 글쓴이들이 강연하고, 글쓴이를 만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인다. 전시회도 음악회도 한다.
책방 주인이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에 빠진 탓일까. 화요일 밤마다 '션샤인 학당'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어 19세기 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악령이 출몰하는 조선의 바다', 두 번째는 '아메리카 유진초이의 탄생', 세 번째는 '구동매, 김희성이 본 일본'이라는 주제로 각각 19세기 말의 조선의 역사, 미국의 역사, 일본의 역사를 공부한단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는 날에는 나에게도 참석해주기 바란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니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일본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화요일은 야간 수업이 있어서 가지 못한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자, 수화기 너머 책방 주인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19세기 말이야말로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일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시대가 아니었을까"라는 말에 나는 "NO"라는 답을 하고, 그들도 이 시대를 아파하고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을 더했다. 19세기 말 일본을 이야기하면서 '피해자'라는 위험한 발언을 했다. 내뱉은 말이니 그럴싸하게 설명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책방 주인을 위해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가 1972년에 완결한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NHK 대하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을 들먹였다. NHK는 이 소설을 2009년 13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3년간 방영했다.
시바 료타로는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비롯된 러시아의 만주 지배에서 러일전쟁의 직접 원인을 찾는다. 러시아가 만주를 지배한다는 것은 대륙으로 이어진 조선반도까지 진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반도에 러시아 세력이 진출하면 일본 역시 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 방어를 위해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구하기 위한 애국적 전쟁, 국가적 위기에 맞선 일본의 자위적 노력이었다고 합리화한다. 이른바 먹히지 않기 위해서 먹어야 했다는 러일전쟁에 대한 설명은 러일전쟁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희석하고, 이후 계속되는 근대 일본의 전쟁에 대한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역사관'이라고 했지만, 러일전쟁에 대한 이런 인식은 어떤 특별한 사학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안방극장을 장악한 대하드라마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갔고, 이것이 평범한 일본인의 머릿속에 그렇게 그려졌다. 시바 료타로의 기본 생각은 '당시 일본에는 조선이 러시아의 영토가 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고, 러일전쟁이다'. 이 생각은 '언덕 위의 구름'을 통해서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역사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전쟁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뻔뻔한 자기변명뿐이다. 그렇다고 일본 사람 모두가 양심이 없는 악한 사람들이라 역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양심을 건드리지 않는 역사관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른바 전쟁을 해야만 했고 제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알기는 해야 할 것 같다.
화요일 오늘밤에도 션사인 학당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를 항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벼슬보다 더 좋은 총 쏘는 것보다 어렵고 그보다 더 위험하고 그보다 더 뜨거워야 하는 '러브' 그런 것이나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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