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로 찌르는 조선군 용포 입은 王의 활 쏘기 모두 '엉터리' 입니다

입력 2016-07-15 22:30:02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최형국 지음/인물과 사상 펴냄

조선시대 사극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무기는 창처럼 길고 끝에 가지가 3개 달린 당파(삼지창)다. 병사들이 당파를 들고 전쟁터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임진왜란을 그린 사극에서도 조선 수군은 당파를 들고 왜군들과 싸운다. 심지어 도성의 치안을 담당했던 포도청 포졸들이 옆구리에 당파를 끼고 순라를 도는 모습도 자주 나온다.

정말로 그랬을까?

이 책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는 무지와 오해로 얼룩진 사극 속 전통 무예의 민낯을 보여준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사극 속에서 반복되는 군사사와 무예사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다.

당파는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를 통해 들어온 무기로, 최신 무기였으며, 담력이 강한 병사들만 사용하는 특수 무기였다. 그럼에도 조선군 하면 으레 당파가 떠오른다.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에 들어왔음에도 조선 태조 이성계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에도 당파가 나오고, 세조를 극화한 사극에서도 친위병들이 당파를 들고 뛰어다닌다. 일제강점기 광복군이 K2 소총을 썼다는 식이다.

사극은 시대뿐만 아니라 당파의 사용 목적도 왜곡하고 있다. 당파는 조선 후기에도 보편적으로 사용한 무기가 아니었다. 당파는 3개의 창날 중 좌우 창날이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어 깊숙이 찌를 수 없는 구조다. 찌르는 무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당파는 적을 찌르는 무기가 아니라, 적이 긴 무기로 찔러 올 때 양쪽으로 휜 창날을 사용해 적의 무기를 찍어 누르는 일종의 특수 병기였다. 한 사람이 당파로 적의 무기를 찍어 누르면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적을 제압했다.

조선시대 병법서는 '용맹과 위엄이 뛰어나고 담력이 큰 사람을 따로 선발해 당파를 쓰게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특수 훈련을 받은 정예병들이 쓰는 무기였지 평범한 병사나 포졸들이 쓰는 무기가 아니었다.

사극에서는 종종 왕이 용포를 입고 활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펄럭이는 소매 때문에 활을 쏠 수가 없다. 활을 당겼다가 놓으면 시위가 화살을 밀면서 날아가야 하는데, 시위가 화살을 밀기 전에 소매에 부딪혀 화살이 갈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극에서 불이 붙은 불화살이 날아가는 것도 엉터리다. 활활 불타는 화살을 사용한 것은 고려 중기 이전의 방식이다. 조선시대에는 화약기술이 보급되어 얇은 심지에 불을 붙인 화살이 적진에 박히고, 이후 작약 통 속에 든 화약이 터지면서 주변에 불길을 일으켰다. 활활 불타는 조선의 화살은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돌리는 오류다.

사극에 흔히 등장하는 덩치 큰 전투마는 경주용마인 '서러브레드'다. 이 말은 17세기 이후 영국에서 경마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아랍종과 교배를 통해 얻은 경마 전용 말이다. 지구력이 약하고 다혈질이라 전투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실제 전투에 쓰였던 말들은 다리가 짧고 덩치는 중간 크기이며 지구력이 좋은 말들이었다. 지금 제주에서 한라마라는 이름으로 개량된 말들이 과거 전투마에 가장 가깝다. 서울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상이 입고 있는 갑옷은 중국식 견박형 갑옷이다. 칼로 땅을 짚고 선 자세도 잘못됐다.

이상훈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우리는 사극 풍요 속에 살고 있는 동시에 고증의 빈곤 속에 살고 있다. 이 책은 메말랐던 사극 고증의 한계를 적셔주는 소나기다. 무기, 군복, 갑옷, 승마, 기병, 행군, 진형, 진법, 병서, 신호 등 무예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최후의 조선 무사, 최형국 소장이 갑옷을 입고 글을 쓰며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몸으로 쓴 흔적들이다'고 평가한다.

지은이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학과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문적 연구를 하는 한편 직접 조선시대 무예를 복원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사)무예24기보존회 시범단장을 역임했다. 23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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