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암호해독

입력 2016-03-30 20:54:26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암호기계 '에니그마'(Enigma)가 생성하는 암호문은 난공불락으로 보였다. 이 기계의 핵심 장치는 톱니바퀴처럼 생긴 회전자(回轉子)인데 이를 장착하는 순서에 따라 전혀 다른 암호가 생성되며, 톱니바퀴 둘레에 알파벳을 배열하는 순서에 따라서도 완전히 다른 암호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암호도 기계 내부의 반사경을 이용해 다시 바꿀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에니그마의 문자판을 한 번 두드릴 때마다 생성 가능한 문자 조합의 가짓수는 무려 40경(京) 개에 달한다고 한다. 히틀러는 독일인의 도움 없이 에니그마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미 잘 알려졌듯이 에니그마 암호체계는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이 참여한 영국 암호해독부대 '브레츨리 파크'에 의해 해독됐다.

일본군의 암호체계도 이런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일본은 독일이 제공한 에니그마를 바탕으로 비슷하지만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암호기계를 만들었다. '97식 구문인자기'(九七式歐文印字機)라는 것인데 처음 암호화한 메시지를 복잡하게 얽힌 전선으로 통과시켜 한 번 더 암호화하는 방식이다. 이 역시 생성 가능한 경우의 수는 에니그마만큼 많아 '수학적'으로는 풀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이 기계로 전송되는 암호문 JN-25도 4만5천 개의 다섯 자리 숫자로 이뤄져 있어 '97식 구문인자기'와 JN-25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경우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 때문에 일본은 미국이나 영국이 절대로 자신의 암호를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암호학자인 윌리엄 프리드먼이 이끈 미 육군통신정보국(SIS)에 의해 에니그마처럼 발가벗겨졌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총기 테러범 사이드 파룩의 '아이폰 5c'의 암호를 풀고 주소록 등 데이터에 접근하는 데 성공해 화제다. 아이폰을 열려면 숫자'대문자'소문자 등으로 암호 6자를 입력해야 하는데 경우의 수는 무려 568억 개이며, 모두 시도하려면 144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FBI는 지난 21일 "애플의 도움 없이 해결할 방법을 시험해보겠다"고 한 지 일주일 만에 아이폰을 뚫어버렸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암호해독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 '황금충'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경구가 생각난다. "암호는 도저히 풀 수 없게 만들어야 하지만 언젠가는 풀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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