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물놀이의 아픈 기억

입력 2013-08-21 08:47:24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공동묘지 아래 냇가는 물이 바위를 부딪치고 지나면서 '소'(沼)를 형성하고 있었다. 물이 깊기도 했고 참 맑았다. 바위도 적당히 층이 져 있어서 높이별로 뛰어내리기와 다이빙이 가능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물놀이 장소였다. 여름 냇가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많던 시절인데다가 100호나 가까이 되는 큰 마을이었다. 여름방학이면 우리들은 아침밥만 먹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냇가로 달려갔다.

물에서 살다시피 한 우리들에게 '뛰어내리기' 정도는 그야말로 '얼라'들이나 하는 초보 물놀이로 간주되었다. 초등학교 1, 2학년만 되면 다이빙도 시시해질 정도로 물놀이에는 고수가 된다. 다이빙이 심심해지기 시작하면 다음 기술인 '등치기'로 들어간다. 등치기란 높은 곳에서 회전을 해 물 위에 누워 떨어지는 묘기(?)를 말한다. 물에 떨어질 때 '철썩!' 물이 쫙 갈라지면서, 마찰로 엉덩이와 등이 따끔따끔해지는 것이 아주 기분이 좋다.

그날 나도 다이빙에는 더 이상 재미를 못 느끼고 등치기에 도전을 하게 된다. 남보다 앞서고자 하는 마음은 어려서부터 있었던가 보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은 아픔만을 남긴다는 것을 일찍 깨닫게 된다. 발 굴림이 약해 물 위에 떨어지기 전에 튀어나온 바위에 먼저 머리를 부딪치고 만 것이다. 그 순간에는 정신을 잃었지만 바로 물에 떨어지는 바람에 정신이 들어 스스로 헤엄을 쳐 나왔다. 형들 말로는 물에서 머리가 솟아오를 때 온통 얼굴이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고 했다.

당시 우리 마을에는 약방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웬만한 의료행위는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저씨가 군 위생병 출신쯤 되었던 모양이다. 일을 하다가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달려오셨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껴안고 진저리부터 쳤다. 그러고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고맙습니다!'를 연신 외쳐댔다. 마취도 없이 꿰맸다. 얼마나 아프던지. 하도 힘들어하니깐 듬성듬성 몇 바늘만 꿰매고 말았다. 그래서 흉터가 크게 남았다.

나이가 들어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그 상처의 흔적과 함께 그때의 일들이 새삼 떠오른다. 그런데 어째서 그때는 내 아픈 것만 알고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는 것은 몰랐을까? 머리뼈가 하얗게 드러날 만큼, 죽음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어린 아들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내 아이를 키워보고 나서야 겨우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으니….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꿰매야 한다는 아버지와 애처로워 그만하자는 어머니의 다급한 말다툼이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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