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알자] 조현병(調絃病)

입력 2012-04-02 07:40:52

나도 모르게 기괴한 행동, 환각·망상 등 흔한 증상

전 국민의 1%가 앓는 것으로 추산되는
전 국민의 1%가 앓는 것으로 추산되는 '조현병'. 꾸준한 약물치료를 하지 않으면 계속 재발하며 증세도 악화된다.
조현병을 겪었던 영국 화가 루이스 웨인(1860~1939)의 유명한 고양이 그림. 병세가 심해지면서 점차 고양이의 모습도 추상적이고 괴기스럽게 변하고 있다.
조현병을 겪었던 영국 화가 루이스 웨인(1860~1939)의 유명한 고양이 그림. 병세가 심해지면서 점차 고양이의 모습도 추상적이고 괴기스럽게 변하고 있다.

'조현병'(調絃病)을 아십니까? 흔히 정신분열병으로 통용되던 정신질환의 이름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정신분열병은 영어를 한글로 그대로 풀어쓴 것이지만 어감이 좋지 않고 환자들에 대한 편견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이번에 조현병으로 바뀌었다.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 신경계에 일부 이상이 있어 행동이나 마음에 문제가 나타나는 병이라는 과학적 의미를 악기의 현이 늘어지거나 틀어져 올바른 음을 내지못하는 상태에 비유한 것.

◆증상은 어떤 것이 있나?

환자마다 워낙 다양한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병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이 때문에 환자의 가족이나 이웃들은 자신이 경험한 환자의 사례만 보거나 듣고 나서 조현병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기 쉽다.

증상은 크게 양성증상과 음성증상으로 나눈다. 쉽게 말해서 흔히 '미쳤다'거나 '이상하다'고 표현하는 괴이하거나 비논리적인 행동이나 말들이 뚜렷하게 나타날 때 '양성증상'이라고 한다. 환각(환청), 망상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음성증상은 대개 만성 조현병 환자들에서 많이 보이는 것. 뚜렷하지는 않지만 곁에서 보기에 흔히 '뭔가 나사가 빠졌다', '게으르다'고 표현하는 듯이 둔하고 멍한 행동과 사고, 감정을 나타내는 상태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매우 제한돼 있고, 감정 반응이 거의 없거나 부적절하다. 말도 거의 없거나 생각을 하지 않으며, 아무 의욕이 없는 상태다.

흔한 증상으로 환각과 망상이 있다. 특히 가장 흔한 환청은 주변에 아무도 없고 사람들이 말을 건네지도 않았는데 귀에서(또는 머리 속에서) 소리가 들리는 증상이다. 특히 말소리가 환자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거나 욕을 하고, 두 사람 이상의 말소리가 환자에 관한 내용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경우가 많다. 보거나 만지고 냄새 맡는 등에서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망상은 이성적인 설득으로는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병적인 믿음'을 말한다. '누가 나를 감시하고 내 뒤를 미행한다, 내 주변에서 도청하고 몰래 카메라로 감시한다, 작당을 해서 나를 못살게 군다, 밥에 독약을 넣었다, 내 생각을 빼앗아 가서 생각을 할 수 없다, 나를 조종한다, 생각을 내 머리 속에 집어넣는다, 텔레파시를 보낸다, 텔레비전 또는 라디오, 신문에서 내 얘기를 한다'는 등의 피해망상이 흔하다. 남의 행동이나 말, 주위의 변화가 자신과 관계있다고 생각하는 관계 망상도 많다. 아울러 과대망상, 신체망상, 배우자의 부정을 의심하는 질투망상, 종교와 연관된 망상, 죄책망상, 허무망상 등을 보이기도 한다.

◆조현병은 무엇인가?

조현병을 한마디로 '이런 병이다'라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워낙 다양한 원인으로 생기는데다, 병의 경과나 양상, 치료에 대한 반응, 치료후 결과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정확한 원인도 모른다. 다만 근래 들어 근본 원인을 '뇌 세포의 기질적이고 구조적인 생화학적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치 췌장의 병이 당뇨병이듯 조현병은 뇌 세포의 병이라는 것.

병을 갖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대략 전체 인구의 1%가 앓는다.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시작해 평생 지속될 수 있다. 환각이나 망상, 의미 없는 말, 기괴한 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지만 병을 진단할 수 있는 확실한 검사법은 없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려면 병력, 개인력, 가족력 등을 자세히 듣고 환자의 행동 양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신체질환이나 특정물질 사용으로 인한 정신병적 장애를 가려내기 위해 철저한 신체 및 신경학적 검사도 한다. 처음 발병한 환자와 뇌의 기질적 병변이 의심되는 경우는 CT 또는 MRI 촬영이 필요하다. 임상심리검사도 진단에 도움이 된다.

유전연구 결과를 보면, 조현병 환자 일차가족(부모, 형제, 자녀)의 평생 발병위험률이 1.4~6.5%인데 비해 정상인 일차가족의 위험률은 0~1.1% 수준이다. 쌍둥이 연구에서 일란성 쌍둥이는 47%, 이란성 쌍둥이는 12%의 발병일치율을 보인다.

유전적 요인이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아직 유전양식은 분명하지 않다. 최근 분자생물학의 도움으로 조현병 관련된 염색체 부위가 여러 개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발병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 역시 드러나지 않았다.

◆치료가 가능한가?

아직까지 완치가 쉽지 않아서 언제까지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 목표는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막고, 심한 정도를 줄이며, 심리사회적 기능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뇌 세포 질병이기 때문에 뇌세포의 기능 이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을 조절해 정상 생활을 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약물치료가 가장 우선적인 치료법이다. 불안, 초조, 불면, 혼란스런 이상한 느낌이나 생각, 한 가지에 집착되는 생각, 환각, 망상, 짜증, 분노 폭발, 충동적이고 난폭한 행동, 집중력 장애 등은 약물로 개선될 수 있다. 항정신병 약물을 지속 투여하면 재발 가능성을 약 4분의 1로 줄인다. 약물을 투여하지 않으면 일 년 내 재발이 55%에 이르지만 계속 투여하면 14%에 그친다. 또 약을 먹는 중에 재발하면, 먹지 않았을 때보다 증상도 훨씬 가볍고 다른 약물을 투여해서 빨리 호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항정신병 약물에 대한 오해와 편견(표 참조)이 많다. 이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는 질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세간의 소문만 믿지 말고 반드시 의사와 상의를 해야 한다. 약물치료 이후엔 개인 정신치료뿐 아니라 집단치료, 가족치료 등이 필요하다. 아울러 재발과 재입원의 악순환을 예방하려면 정신사회재활치료도 함께해야 한다.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재 교수는 "첫 입원 환자를 5년 이상 추적한 연구 결과, 20% 정도만이 완전 회복되고, 15~35%는 지속적으로 심한 정신병적 증상을 겪으며, 50% 정도는 입'퇴원을 되풀이한다"며 "최근 들어 항정신병 약물의 발달과 심리사회적 치료, 정신재활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장기 입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도움말=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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