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문학사단을 아십니까"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로 불리는 도광의(71) 시인은 마산고등학교(1967∼1968)를 거쳐 1971년부터 1996년까지 대구 대건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다.(대구효성여고에서 1997∼1999년 재직한 것을 마지막으로 교직 은퇴) 그는 학생들에게 '이거 시험에 나온다. 밑줄 그어라'고 말하는 대신 시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박덕규, 문학평론가 하응백, 번역가 이경식, 최근 장편소설 '매혹'을 펴낸 조선일보 선임기자 최보식,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완준, 시인 서정윤, 이정하, 권태현, 안도현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바로 그의 제자들이다. 한 사람의 고교 스승 밑에서 이렇게 많은 문인 제자가 배출된 경우는 없을 것이다.
도광의 선생은 괴팍했다. 불시에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기도 했고, 복장을 문제 삼아 매를 들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시건방지게 금테 안경을 쓰고 다닌다며 꾸중하기도 했다.
그는 과음하기 일쑤였고, 다음날 수업시간에 숙취로 고생했다. 수업 중에 하도 자주 주전자 물을 들이켜 학생들이 '금붕어'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도광의 선생은 사시장철 외상술을 마셨고, 월급날 외상값을 제하고 남은 실수령액이 고작 7천원에 불과한 적도 있었다.
3년 동안 도광의 선생을 담임으로 맞았던 장삼철(대건고 28회) 씨에 따르면 선생은 수업 시간에 교과서 진도는 뒷전이었고, 문인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참고서에 다 나오는데 뭐 하러 설명하나. 집에 가서 읽어봐라. 모르는 거 있으면 질문하고."
그렇게 한마디 툭 내뱉은 선생은 한국 문단사,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의 계보, 인물 이야기,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글쓰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로망이었고 자긍심이었다. 그는 종종 지그시 눈을 감고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시 낭송뿐만 아니라 수필 작품도 통째로 외웠다. 학생들에게 외우라고 말하는 대신 그 자신이 좋은 시를 외웠고, 특유의 낭송 솜씨로 감수성 높은 학생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지금도 약 200수의 시를 암기하고 있으며, 술자리 흥이 오르면 불쑥 시 한 수를 읊조린다. 난데없이 끼어든 그의 시는 금세 왁자지껄하던 좌중을 압도하고, 사람들은 침 삼키는 소리조차 삼간 채 그의 시를 듣는다.
대건고 29회인 안도현 시인은 "비 내리는 동성로 한복판에서 우산도 없이 바바리코트를 입고 걸어가는 선생님을 누가 보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울렁거렸다"고 말한다. 그는 "도광의 선생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으나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아니, 느끼고 있었다고 해야 정확하다"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하응백(대건고 28회) 씨는 "도광의 선생님은 문예반 학생들을 특별히 편애했다"고 말한다. "당시 대건고 학생들 중에 선생님한테 안 맞은 학생이 드물 것이다. 그러나 유독 문예반 학생들은 맞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문예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선생님께 들켰는데, 못 본척 그냥 나가셨다"며 "다른 학생이었으면 거의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도광의 선생의 문인 제자들은 당시 그처럼 많은 문인들이 배출된 이유로 자유로웠던 학교 분위기와 도광의 선생의 시적 낭만을 꼽는다. 당시만 해도 학생들의 서클 활동이 자유로웠고, 보충수업은 없었다. 요즘에 비하면 수업은 한참 늦게 시작했고, 일찍 마쳤다. 방과 후 과외를 받는 학생도 드물었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소질을 발굴하고 계발했다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내가 밤새워 고치고 또 고친 시를 선생님이 무참하게 가위질할 때 생살이 잘려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런 날이면 비참한 기분에 젖어 자포자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날이 없었다면 나는 언어의 난봉꾼이 됐을 것이다" 며 "혹시 내가 쓰는 시에 언어를 절제하는 능력이 손톱만큼이라도 보인다면 그것은 다 도광의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고 말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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