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시대, 아파트 임대시장 판도 변화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습니다. 대신 월세를 구하는 게 어때요.'
6일 오후에 찾은 수성구 만촌동 메트로팔레스 인근의 권오인 공인중개사 사무실은 전화벨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요새 아파트 전셋집은 '밤새 안녕'입니다.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매물은 바닥입니다." 전세 매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계약이 된다는 게 권 씨의 설명이다. "전세를 찾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찾아는 보겠는데 한두 달 안에는 원하는 집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차라리 월세를 구하는 것이 빠를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실제 이날 메트로팔레스의 경우 전세는 두세 집이 나와 있는 반면 월세는 10집 정도 나와 있었다. 겨우 나온 전세라곤 초고층이나 저층 등 어느정도 핸드캡이 있는 집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기자는 메트로팔레스의 또 다른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을 물었지만 역시나 그 대답은 "차라리 월세를 구하는 것이 낫다"는 충고였다.
◆월세, 전세와 겨루다
부동산 임대시장이 전세 천국에서 월세 시대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주택거래가 뚝 끊기고 저금리, 집값 하락 등의 이유로 전세가격이 높아지면서 월세가 부동산 임대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저금리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전세를 놓은 집주인들은 이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졌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4%에도 미치지 못하고 여기에 이자소득세를 내고나면 실질 물가 상승률보다는 밑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집주인들은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그래서 임대시장에서 월세 비중은 늘고 있는 것이다. 월세를 놓기 위해 집을 몇 개월씩 비워두는 경우도 적잖다. 상황이 이렇자 월세를 외면해오던 세입자들도 월세로 돌아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월세 선호 현상은 주택 임대시장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동안 전세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제도로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최근까지 주택 임대시장에 군림했다. 또 집주인은 내집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거나 전세금을 은행에 넣어둬 이자수익까지 누릴 수 있었다. 세입자 역시 매달 추가 부담없이 집값의 반값 정도로 2년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이런 구도가 깨지기 시작했고, 최근들어 물가 감안 마이너스 금리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런 구도 변화는 더욱 분명화되고 있다. 과거 높은 전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신혼부부나 독신자들이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에서 주로 체결하는 계약 형태였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의 월세 분위기는 큰 변화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아파트의 전세와 월세 비율은 과거 고금리 시대의 경우 8대 2 정도였으나 지난해 그 비율이 6대 4 정도로 월세 물량이 크게 늘었다가 최근 수성구 일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4대6정도로 역전되고 있다.
수성구 한 공인중개업소는 "집 주인들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꿔 중개를 의뢰하는 경우가 꾸준히 늘고 있고, 중소형은 월세가 70%에 이른다"며 "부동산 임대시장이 투자 차익에서 임대 수익 위주로 전환되면서 비교적 세입자에게 유리했던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전세제도가 외국식 렌탈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월세, 진화하다
2년전 1억1천만원을 주고 북구 태전동의 한 아파트에 입주한 직장인 최모(37) 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 2천만원을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며칠동안 이 지역 일대를 이 잡듯하며 다른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통 찾을 수 없었던 최 씨는 집주인을 설득해 매달 10만원씩 월세를 추가로 내는 조건으로 '전세+월세형'계약을 했다. 재계약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실리를 준 셈.
실제 집주인은 전세금 2천만원을 더 받아 은행에 예치해 받는 이자보다는 이번 전세와 월세 복합형 계약으로 240만원 추가 이익과 아파트 도배 비용(평균 100만원)과 중개수수료까지 절약하는 효과까지 본 것이다. 세입자의 경우도 월세 비용이 발생했지만 역시 2천만원이라는 갑작스런 목돈 마련 부담을 줄였다. 최근 부동산 임대시장에서의 월세계약 다양화의 한 사례다.
약간의 목돈을 보증금으로 내고 월세를 후불로 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전세보증금의 부족분을 월세 명목으로 이자를 계산해서 내는 '전세 같은 월세'가 늘고 있다. 또 월세를 선불로 주면서 임대하는 방식이나 일정기간의 월세를 한꺼번에 지불하는 방식도 적잖다. 최근에는 대학가 주변을 중심으로 임대기간을 6개월 미만으로 단축시킨 초단기 월세도 선보이고 있다.
대구 수성구 조성희 공인중개사는 "올라간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세입자들이 전셋값 상승분만큼을 월세로 바꿔 내거나 아예 5천만원이나 1억원에 보증금을 맞추고 나머지를 월세로 받는 형태의 전세같은 월세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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