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대구시 중구 서성로 '깡통골목'. 소나기 소리와 뒤섞인 함석 두드리는 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빗줄기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던 이득영(69) 씨는 "뭐 만드냐고? 다 만들지. 50년 넘게 했는데 못 만드는 게 어딨겠어"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 일대에 함석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깡통이나 드럼통을 재생해 파는 상점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깡통골목'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주변에 철물점이 많았고 전쟁 후 자연스레 철물, 함석, 배관, 공구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모였다.
"깡통골목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서울, 부산 등 전국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어 달라며 모여들었지." 이 씨는 "내가 한창 젊었을 때 황소 기운을 낸 시절이 있었듯이 깡통골목도 전성기가 있었다"며 잠시 말을 끊었다.
이 씨가 함석을 다루는 일을 시작한 것은 어릴 때 아버지 때문. 일본에서 기술을 배운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함석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이 씨가 처음 만든 제품은 아이스크림 제조틀이었다. 5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아직까지 이 씨의 머릿속에는 제조틀 설계도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종이로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종이공작이라고 하잖아. 우리는 함석으로 다 만드니깐 매일 함석공작을 하는 셈이야."
이 씨는 색이 바랠 대로 바랜 가위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가위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60년도 훨씬 넘은 거야. 그런데 아직도 쓸만하단 말이야."
이 씨가 가위를 갖다대자 손쉽게 함석이 잘려나갔다. 이 씨는 "힘 안 들이고 자르는 것도 기술이야. 여기 있는 도구 대부분이 40년이 넘었다"라고 말했다. 가게 한쪽 벽에도 색이 변한 함석가위 등 작업 공구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이 씨는 주문이 들어오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려고 노력한다. 기계로 하는 것보다 사람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 더욱 튼튼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
"54년 동안 이 일을 하려면 장인정신도 있어야 해. 고깃집 환풍기를 수리하러 갔더니 관이 전혀 안 맞았어. 한 번에 기계로 대충 만들어 붙였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오랜 시간 수작업을 거치다 보니 주변의 가게 사람들에게 직접 기술을 가르쳐 줄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작업이 내 도움으로 해결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
깡통골목에는 대를 이어 가게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씨는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내 몸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물건을 만들 생각"이라며 웃음 지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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