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도시 번성하는 도시](10)경기 민감한 美 라스베이거스

입력 2010-09-10 07:42:28

호텔 숙박비 덤핑경쟁 20∼30$짜리도…도시 화려함은 '속빈강정'

경기 침체로 신축 공사가 중단된 라스베이거스 도심의 호텔들.
경기 침체로 신축 공사가 중단된 라스베이거스 도심의 호텔들.
라스베이거스 도심 주택가에는 헐값에 나온 주택 매물들이 쏟아져 있다.
라스베이거스 도심 주택가에는 헐값에 나온 주택 매물들이 쏟아져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경기 침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인적이 끊어지고 있는 구도심.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경기 침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인적이 끊어지고 있는 구도심.

미국 대부분 도시는 압축 성장을 해왔다. 도시 역사가 짧게는 수십 년, 길어봤자 100~200년 정도에 불과하다.

또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것처럼 도시들도 철저하게 자본에 논리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해 오고 있다. 금광을 따라 발전했던 서부 개척 시대와 같이 '돈'이 있는 곳이면 기업과 사람이 몰리고 '돈'이 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외면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미국 도시 중에서도 가장 역동성을 가진 곳이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다. 도시의 전체 역사가 80년 정도며 카지노 산업 발전으로 지난 30년간 인구가 5배 증가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해온 도시다.

하지만 불황을 모르던 라스베이거스도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미국 경기 침체에다 경쟁력을 갖춘 카지노 도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발전 한계'에 도달한 때문이다.

◆바겐세일 중인 라스베이거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이어지는 15번 고속도로. 8월 휴가철을 맞아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며 차량들이 끊임없이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차가 없는 편입니다. 경기가 좋던 예전 같으면 여름 휴가철인 요즘 도심 도로는 물론 고속도로도 꽉 막힐 정도로 차들이 꼬리를 몰고 이어졌습니다." 택시기사 앤디 씨는 지난해보다는 그런대로 사정이 좋지만 라스베이거스가 경기 불황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카지노 산업'으로 살아온 라스베이거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도시 중 하나다. 미국 ABC방송은 지난해 '경제 위기로 버려진 도시' 1위로 라스베이거스를 선정했다. 사무실 공실률 16.0%, 주택 공실률 4.7%로 미국 평균치보다 각각 5.9%, 1.8%포인트 높은 등 도시 전체가 비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는 화려한 겉모습을 자랑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황의 그늘을 발길 닿는 곳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루 객실료가 100달러를 넘었지만 요즘은 비싸도 50달러면 됩니다. 카지노를 찾는 손님이 50~60% 줄면서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한 할인 정책입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호텔은 숙박료가 20~30달러로 떨어졌습니다." 럭셜(LUXUR)호텔 카지노 매니저인 린디 씨는 호텔마다 객실료 인하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린디 씨는 "라스베이거스에서 15년 정도 일을 했는데 지난 2년간이 가장 힘들었다"며 "라스베이거스에 이러한 불경기가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초호화 호텔이 밀집한 거리인 스트립에 위치한 대형 호텔 중 하나인 윈(WYNN) 호텔이 200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등 '실직'의 공포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인구 200만 명인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한인은 대략 2만여 명. 돈이 몰리면서 서부 해안 도시에서 이주한 한인들이 10여 년 전부터 급증한 때문이다. 하지만 불황이 이어지면서 한인들도 이곳을 떠나고 있다.

한인 식당에서 만난 30대의 여주인은 "몇 년 전만 해도 하루에 몇백 명씩 한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들어왔지만 요즘은 한 달에 2천여 명씩 떠나고 있다"며 "손님이 줄면서 가게 운영도 걱정"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라스베이거스 위기 원인은

라스베이거스가 앓고 있는 불황의 직접적인 원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라스베이거스 주고객이 밀집한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생하면서 손님이 급격하게 줄어든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를 대비하지 않은 라스베이거스의 안일한 성장 전략도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예전에 30만달러 하던 집값이 15만달러 정도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땅값하고 건축비 등 순수 원가가 25만달러를 넘지만 구매자가 없고 핫 세일 물량은 늘어나니 시장 가격이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뉴스타 부동산의 매니저인 케빈 씨는 "높은 실업률에다 한때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이어진 탓에 부동산 가격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라스베이거스 주변 주택가에는 '프리 렌탈'이라는 플래카드를 써붙인 주택 단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부동산 회사들이 구매자를 찾을 수 없어 집을 월세로 내놓았지만 이마저도 찾기 힘들어 입주자에게 한두 달 정도 월세를 받지 않는 할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 화려한 외관으로 멋을 낸 호텔들이 형성한 스카이라인도 자세히 살펴보면 사이사이에 흉한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신축 공사를 하다 중단된 호텔들이 곳곳에 방치된 때문이다.

3조원을 투자한 퐁텐블로(파운테인) 카지노 호텔의 경우 건물 완공을 2달 앞둔 지난해 10월 공사가 중단됐으며 베네치안, 코스모폴리탄 호텔 등이 추진하던 신축 공사도 골조만 올린 채 중단돼 있다.

현재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은 180개이며 객실은 13만3천여 개에 이른다. 또 규모를 갖춘 카지노만 200여 개다. 하지만 2007년 전후로 4만 개의 객실이 추가 공사에 들어가면서 과잉 공급에다 경기 불황에 따른 수요 감소까지 겹치면서 해결책 없는 '불황'을 겪고 있는 것.

또 다른 문제는 제2의 라스베이거스가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 리모델링 이후 카지노의 메카로 새롭게 등장한 마카오는 경제성장으로 부유해진 중국인을 흡수하며 2008년 연간 수입이 라스베이거스를 누르며 세계 1위 카지노 도시로 성장했다. 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도 국가 주요 정책으로 카지노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고, 미국 최대 성장 지역인 남부 텍사스주도 연내로 카지노 산업 합법화를 추진하면 제2의 라스베이거스를 꿈꿀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미래는

카지노 산업으로 도시 발전의 한계를 느낀 라스베이거스는 컨벤션산업을 집중 유치하며 한때 성공적인 발전을 이어가는 듯했다. 2007년도에만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 전시회인 CES를 비롯해 방송장비 전시회 NAB, 자동차 부품전 SEMA 등 2만3천 건의 각종 전시회를 유치하며 10조원의 경제 유발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경기 불황으로 각종 행사가 축소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고액 연봉을 받던 금융기관 임직원들을 향해 "납세자의 돈으로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가거나, 슈퍼볼을 보러 갈 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골드만 삭스 등 구제 금융을 받는 금융기관들과 대형 업체들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려던 각종 컨벤션을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90%에 이르던 호텔 투숙률은 50% 미만으로 떨어졌고 실업률은 3%에서 13%로 치솟은 상태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로 라스베이거스의 미래를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다.

풍부한 숙박시설에다 대형 컨벤션센터, 각종 볼거리는 컨벤션 도시로서 최적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기에 민감한 업종인 카지노와 컨벤션이 미국 경기 회복에 따라 다시 성장할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적지 않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향후 30년 동안 성장을 이어갈 도시 중 하나로 라스베이거스를 꼽았다.

'사막의 기적'이라 불리며 80년간 고도 성장을 이어온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로 빠져나오며 이 도시가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의 성장을 다시 이어갈지 사뭇 궁금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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