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와 오나라의 왕 구천과 부차의 승패를 거듭한 싸움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을 남겼다.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으며 치욕을 잊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에게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는 교훈으로 회자됐다. 한번 쓰러짐은 끝이 아니며 다시 일어나 달려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이 길고도 긴 여정이기에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도 한다. 고통을 감당해 낼 때 극과 극의 큰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격려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발간됐다.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거쳐 간 고인은 자서전에서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정적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일화를 적고 있다. 퇴임 후 박 전 대표가 찾아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말씀 드린다'는 말에 그는 '뜻밖이었고 참으로 고마웠다'고 술회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박정희가 환생해 화해의 손길을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받는 것 같았다'고 감격스런 소회를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분이다. 오늘의 한국을 이룬 지도자이자 독재자의 양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그 역시 대통령이 되기 전 죽음의 문턱까지 내밀린 적이 있다. 건국 초기 숙군작업에서 남로당 가입 전력이 드러나 사형 선고를 받았다. 죽음 직전에 이른 그의 인품과 능력을 아까워한 주위 동료들이 구명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역사는 전혀 다를 수도 있었다.
두 분은 정치 여정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지만 죽음의 나락까지 떨어졌던 고통을 견디고 다시 일어선 점에서는 비슷한 삶을 보여준다. 나락으로 떨어진 운명의 올가미를 인내와 희망으로 벗어난 점에서 그렇다. 고통과 희망이 같은 선상에 있으며 그래서 삶은 반전의 연속이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이나 드라마의 흥미는 반전에 있다. 반전이 극적일수록 더욱 흥미롭다. 그러나 반전은 그저 생기지 않는다. 고통과 인내, 좌절과 희망의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쪼가리들이 모여 반전을 이룬다. 정치는 반전의 연속이라지만 일상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역사의 교훈은 등이 아니라 가슴을 맞대는 상생의 마음을 가지라고 권하는 게 아닐까.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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