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태의 시와 함께] 시집 놓인 책상 / 이기철

입력 2010-04-08 07:23:43

책을 열면 오래 참은 음악이 뛰어나온다

다리의 솜털에 꿀을 묻힌 벌들이 음계를 물고 날아간다

멀리서 쫓아온 햇빛이 창문을 급히 두드린다

시집이 놓인 책상에는

빨간 리본으로 묶은 생일선물 같은 글이 있다

글의 가슴이 다 만져진다

측백나무 숲으로 새똥 묻은 아침이 온다

잠자던 영혼이 햇빛을 받아 깨어난다

페이지를 넘기는 가슴이 뛴다

------------

시인은 분명 '시집 놓인 책상'을 노래했는데, 나는 자꾸만 '꽃들이 피어나는 봄날의 나무들'로 읽습니다. 봄이 되면 겨울의 추위를 "오래 참은" 꽃들이 그야말로 도약하듯 "뛰어나오"겠지요. "다리의 솜털에 꿀을 묻힌 벌들이" 만화방창, 꽃들의 "음계를 물고 날아가"곤 하겠지요. 꽃샘바람에 며칠 날씨가 궂었지만, 이내 "멀리서 쫓아온 햇빛이 창문을 급히 두드릴"테니까요. 여기 봄날에는 "빨간 리본으로 묶은 생일선물" 같은 꽃들이 다투듯 피어날 것입니다. 그 보드라운 꽃잎들의 "가슴이 다 만져질" 테지요. "측백나무 숲으로 새똥 묻은 아침이 오"면,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의 "잠자던 영혼"이 봄 햇살을 받아 깨어날 겁니다. 봄꽃들의 "페이지를 넘기는 가슴은" 당연히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해석이 오독이라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좋은 시란 이렇듯 여러 겹의 의미망을 거느린다 하지 않던가요.

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