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닳아간다는 것

입력 2010-03-03 07:33:52

감기와 몸살은 약속이나 한 듯이 꼭 함께 찾아왔다. 한창 바쁜 시기라 주사를 맞고 약을 복용하면서 정신력으로 버텼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더 처졌다. 순리를 역행한 것이 화근이었다. 몸이 소리를 낼 때는 쉬어주라는 신호인데 신호를 무시하고 달렸으니 사고를 어찌 피할 수 있을까.

침대에 누었다. 천장이 빙빙 돈다. 그 순간 전등이 마치 윙크를 하듯이 깜빡거렸다. 약 기운 때문인가. 눈을 감았다 다시 떠보아도 역시 깜빡거린다.

전등의 수명이 다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전등을 갈아 끼운 지 수개월이 지났다. 나는 깜빡이는 전등을 보면서 무력감에 시달리는 내 몸이 전등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기운이 없고 목도 아팠다. 증상이 감지된 건 일주일 전이었다. 나는 몸이 방전되지 않은 것만도 어디냐는 심정으로 무리해서 끌고 다녔다.

필요 여하에 따라 켜거나 끄면서도 전등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적은 없다. 어둠을 밝히는 게 전등의 의무려니 생각했다. 오늘 텅 빈 집에서 혼자 끙끙 앓으며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이 전등처럼 누굴 위해 빛으로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에 생각이 가 닿았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빛이 되어 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지나온 시간을 뒤적거려 보지만 이것이다 내세울 만한 게 없다. 부끄럽다는 게 이런 것일까. 자신의 의무는 끝났으니 새 것으로 교체를 하라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전등은 마지막까지 빛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닳아왔던가, 부끄러운 마음에 침대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침대가 삐걱, 소리를 낸다. 침대도 전등처럼 앓으며 닳아가고 있나 보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닳아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전등이나 침대는 물론 소파, 자동차, 밥솥, 신발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로 인해 닳아가고 있었다.

닳아가지만 그것들은 생색내지 않는다. 칭찬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만 불 밝혀 온 전등도, 내 무게를 견뎌온 신발도 말이 없다. 말없이 닳아간다. 침대 역시 나를 위해 낡아가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 바퀴를 굴러본 적이 없는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닳아가면서도 겸손한 것들도 많은데 남보다는 자신만을 위해서 닳아온 나의 소리가 그 중 제일 크고 시끄럽다. 다시 3월이다. 아직 닳을 게 남아있을 때 나도 누군가를 위해 말없이 닳아가고 싶다.

임수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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