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독도] 우람한 상장군-날렵한 탕건봉

입력 2008-11-10 08:59:10

▲ 작은가제바위에서 바라본 서도. 오른쪽 솟은 봉우리가 상장군바위, 왼쪽 우뚝한 봉우리 탕건봉. 양쪽 봉우리 중간 해변에 물골이 있다.
▲ 작은가제바위에서 바라본 서도. 오른쪽 솟은 봉우리가 상장군바위, 왼쪽 우뚝한 봉우리 탕건봉. 양쪽 봉우리 중간 해변에 물골이 있다.
▲ 울릉도 방향 바다에 코를 담근 듯한 모습의 코끼리바위.
▲ 울릉도 방향 바다에 코를 담근 듯한 모습의 코끼리바위.
▲ 큰가제바위 작은가제바위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오른쪽 우뚝한 봉우리가 탕건봉이다.
▲ 큰가제바위 작은가제바위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오른쪽 우뚝한 봉우리가 탕건봉이다.

울릉도에서 독도로 들어오면 맨 먼저 만나는 곳이 서도 서쪽 사면이다. 해식동굴을 지난 코끼리바위 중간 지점이다. 이곳 절벽의 면(面)은 뚜렷하고, 바위 결에는 다이아몬드형 각(角)이 서 있다. 바위들은 진청색 바닷물과 어우러져 비취빛 풍광을 그려낸다. 때문에 독도의 첫 인상은 신비롭고도 강하게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이다.

해식동굴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면 긴 세월 물결에 씻겨 구멍 뚫린 바위를 만난다. 동도의 독립문바위를 닮은 코끼리바위이다. 독도의 동도, 서도는 나란히 아치형 바위 하나씩을 사이좋게 품고 있는 셈이다.

동도의 독립문바위가 어깨에 견장과 같은 장식을 달고 있어 독립문 형상을 하고 있다면, 서도의 코끼리바위는 바다 쪽 돌출 아치가 둥그스름하게 미끄러져 내려와 마치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이다. 어깨 쪽 바위 결도 코끼리 거죽과 흡사해 누가 봐도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코끼리바위 정면에는 보찰(거북손의 사투리)바위가 있고 북쪽에는 넙덕바위, 이웃하여 군함바위가 있다. 서도 본섬과 넙덕바위를 아우르는 중간의 바다는 그다지 깊지 않고 해조류와 어패류가 풍부하다. 배를 타고 가면서 연청색 바다 속을 들여다보면, 대왕과 감태 따위 해조류가 물결 따라 숲을 이뤄 일렁이고, 그 사이로 헤엄치는 파랑돔 돌돔 등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스노클링하는 기분으로 볼 수 있다.

이 구간의 해안은 활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섬의 경사면은 서도 꼭대기까지 반원통형 미끄럼틀 모양이다. 정상의 사면은 물골 가는 길로 이어진다. 이곳은 개밀과 띠풀의 군락지이다. 5월이 되면 이곳은 서도 최고의 괭이갈매기 산란장이 된다. 독도에서는 드물게 넉넉한 풀숲이 있어 바닥이 온통 둥지다. 그저 알을 낳기만 하면 되니 괭이갈매기 천지가 된다.

코끼리바위와 만곡의 끝을 이뤄 곶을 만든 곳에는 상장군바위가 있다. 상장군바위의 모양새는 위압적이다. 바위 아랫부분은 바다로 꽂히는 방향으로 사선형 절리(節理·규칙적으로 갈라진 틈)가 발달해 있고, 정상은 두 개의 굵은 나사못을 하늘을 향해 나란히 꽂아놓은 듯하다.

상장군바위에서 보이는 원경(遠景)을 렌즈 안으로 집어넣는다면 한 쪽 끝은 필시 탕건봉에 닿아 물골의 만(灣)을 감싸게 될 것이다. 이 광경은 독도를 가장 독도답도록 표현하는 한 풍경임에 틀림없다. 상장군바위의 우람한 체격의 거친 꼭대기와 대비하여 탕건봉의 날렵한 형상과 깎아지른 평면의 정상은 묘한 대비를 보이며 장엄한 광경을 연출한다. 특히 울릉도서 다가오며 볼 때 독도를 세 개 봉우리처럼 보여 '삼봉도'로 불리도록 한 탕건봉의 위용은 가히 삼엄하다.

상장군바위와 탕건봉을 경계한 물골 해안 정북 맞은편 먼 바다 쪽에는 큰가제바위와 작은가제바위가 나란하다. 바닷물결은 두 바위 위를 뛰어올랐다 내렸다 장난질한다. '가제'는 본디 '가지어'로 이곳 사람들이 강치를 따로 일컫는 말이다. 옛날 이곳 펑퍼짐한 가제바위 위는 수천 수만 마리의 강치들이 무리지어 놀았다. 강치 최대 서식처로 이곳에서 사랑을 하고 새끼를 낳아 번식했다.

조선시대 성종실록은 삼봉도(독도의 옛 지명)에 대한 설명과 '그곳에 갔더니 인형 같은 것이 30여개 서 있었다'는 기록으로 강치가 있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190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 혼란기를 틈타 일본인들은 이곳 가제바위로 들어와 강치를 마구잡이로 살육했다. 경상북도 자료에 따르면 당시 43년간 일본 '다케시마 어렵(漁獵)회사'는 1만6천500마리의 가제, 즉 강치를 잡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시마네현이 1905년 독도 편입이니 뭐니 억지 주장을 펴기 시작한 것도 이 강치잡이 업자의 장난이 단초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독도에는 강치가 없다. 우리가 우리땅을 지키지 못해 이 땅에 있는 생물마저도 멸종의 수난을 당하고, 지금 우리는 강치가 뛰어놀던 바위만 쳐다보고 그 옛날 평화롭던 시절을 머릿속에 그려만 볼뿐이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저 물결처럼 언제 강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