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폭→소폭' 폭탄주 경기따라 춤춘다

입력 2008-08-30 06:00:00

누구는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비난한다. 누구는 또 '한국 고유의 음주문화'라고 칭찬한다. 모두 한국의 '폭탄주 문화'에 대한 평가다. 그러나 직장 회식 자리에서 다양한 폭탄주가 등장하는 것은 이젠 흔한 풍경이 됐다. 폭탄주는 크게 맥주에 소주를 섞는 소주폭탄(소폭)과 양주를 섞는 양주폭탄(양폭)으로 나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분명 양폭이 소폭보다 삼촌뻘이다. 그러나 최근 5년간 소주 소비량 급증 원인을 소폭 문화로 꼽을 정도로 소폭은 이미 우리 음주문화에 한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삼촌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마실 땐 다르지만 취하고 나면 똑같이 느껴지는 소폭과 양폭은 어떻게 다를까?

◆도수는 비슷…맛·향은 달라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폭탄주를 돌리는 편이다. 2차로 3차로 회식이 이어지다 보면 소폭은 물론 양폭도 마시는 일이 다반사. 그런데 양폭만 먹고 나면 다음날이 괴롭다. 직장인 이모(29)씨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숙취는 소폭을 마실 때가 더 심하다는 생각이다. 진실은 뭘까?

먼저, 알코올 함유량을 비교해 보자. 다음은 '폭탄주에 관한 소고'를 쓰고 관련 특강을 하고 다니는 심재혁 레드캡투어 대표이사의 계산법이다. 맥주잔(230㏄)에 맥주(알코올 도수 4~5도) 195㏄와 양주(40~43도) 한 잔(35㏄)을 섞으면 양폭 한 잔의 도수는 약 10.35도. 같은 방식으로 소주(20도)와 맥주를 섞으면 소폭 한 잔의 알코올 도수는 약 9도가 된다. 사실 소폭이나 양폭이나 알코올 도수에 큰 차이는 없는 셈이다. 물론 이는 주종과 제조 방법에 따라서 달라진다. 양폭 도수를 20도 전후로 보는 시각도 많다. 어쨌든 두 폭탄주의 큰 차이는 그 맛과 향에 있다.

대부분의 애주가는 양폭보다 소폭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양폭은 양주 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독한 기운에 목 넘김도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소폭은 술 먹이기 게임으로 활용할 정도로 값도 비교적 싸다. 이런 이유로 소폭을 마시면 양폭보다 음주량이 늘게 된다. 폭탄주를 만들면 소주잔(50㏄)이나 양주잔(35㏄)으로 따로 마실 때보다 훨씬 많은 양(230㏄)을 마시게 된다. 알코올 함유량이 별 차이가 없는 데 음주량은 더 늘게 되니 몸에 쌓이는 알코올 양도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맥주의 탄산은 위에서 높은 도수의 양주를 빠르게 흡수하게 한다. 몸에 부담이 가는 것이다.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창호 교수는 "양폭은 위에서 흡수가 잘 돼 빨리, 소폭은 소주의 쓴맛이 사라져 많이 마셔 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두 폭탄주의 숙취 발생 정도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숙취에 깊이 관여하는 메탄올 함량만 보면 위스키 0.04㎎/ℓ, 소주·맥주 0.01㎎/ℓ이기 때문에 양폭 마신 후에 숙취가 더 발생한다. 그러나 소폭 마신 후에 숙취가 잦다는 의견도 많다. 윤 교수는 두 주종의 숙취 정도에 대해서는 "개인의 알코올 분해효소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중간 입장을 취했다.

◆색다르게 즐기는 '맥주 칵테일'

소폭을 색다르게 즐기는 법도 있다. 직장인 이모(29·여)씨는 "기네스나 호가든처럼 비싸고 맛난 맥주에 소주를 섞어서 아껴 먹기도 한다. 센 맥주맛이 어느 정도 중화되어 넘김이 좋다"며 자신의 비법을 전했다. 양주 향이 부담스러운 양폭에는 레몬이나 커피가루 같은 첨가물을 넣어 마신다. 양주의 독한 향이 사라지고 훨씬 입안이 깔끔한 느낌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맥주 폭탄보다는 만들기도 손쉽고 도수도 약해 가정에서 분위기 있게 한 잔 즐기는 데 제격이라는 맥주 칵테일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맥주에 샴페인이나 토마토, 민트그린, 콜라 등을 적절히 배합하면 칵테일로서는 딱 맞다. '블랙 벨벳(Black Velvet)' '레드 아이(Red Eye)' '민트 비어' '블랙 비어' 등 이름도 예쁘다.

소설가 박상우씨는 "술이란 그것을 마신 사람으로 하여금 정확하게 대가를 치르게 한다"고 했다. 소폭이든 양폭이든 결국 '술이 술을 먹고, 다시 술이 사람을 먹는' 수준까지 간다면 결국 패가망신하기는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조지훈 선생이 '주도 18단'에서 말한 '관주(關酒: 술을 보고 즐기되 마실 수는 없는 사람)'를 넘어 '폐주(廢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의 단계에까지 이를 필요는 없는 법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폭탄주는 술자리 핵융합?

술 잘 먹는 사람도, 못 마시는 사람도 욕하는 폭탄주이지만 나름대로 긍정적인 효과는 있다. 맨정신에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문화가 아직은 서먹서먹한 한국 사회에서 분위기를 살리는 데 용한(?)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소통'하는 데 이만큼 약발이 잘 듣는 매개체도 없다. ▷한 사람씩 돌려가며 마시기에 그냥 마실 때보다 덜 마신다거나 ▷흐트러진 술자리를 하나로 집중할 수 있다 ▷상하 구분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마신다는 점을 폭탄주의 특장점으로 꼽는 폭탄주 애호가들도 많다. "폭탄주를 만들고 마시는 과정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고양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근무 중인 정모(29)씨는 맥주의 밋밋한 맛 때문에 '국에 간 맞추는 느낌'으로 소주나 양주를 타 마시는 경우다. 채모(32)씨도 소주의 쓴맛이 맥주로 중화되는 소폭을 더 좋아한다. 이모(29)씨는 "소폭은 '단맛'이 나서 좋아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맥주를 이용한 폭탄주에도 다양성이 생겨나고 있다.

소폭이나 양폭 대신 부담없이 즐기며 분위기도 흩뜨리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비책을 이용한다. 골퍼들 사이에선 '맥사'가 인기다. 일반 폭탄주를 마시면 왠지 운전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맥주잔에 맥주를 6할 정도 채우고 다른 술 대신 사이다로 나머지 잔을 채우면 끝이다. 직장인 윤모(33)씨는 이를 "운동 후 갈증 해소에는 이온음료보다 더 내 몸에 맞는 물"이라고 평했다.

조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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