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생마저 벌써 '족보' 공부

입력 2008-08-25 09:51:29

교육계 "실력보다 성적지상주의 팽배 우려"

"족보 팝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2학기 준비를 위해 얼마 전 인터넷의 학습정보를 찾던 학부모 김모(40)씨는 깜짝 놀랐다. 전국 대부분 학교에서 출제됐던 시험문제들이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었기 때문. 김씨는 "오는 10월 있을 초교생 학업성취도평가 문제가 제공된다고 해 결국 24만원을 주고 1년간 서비스에 가입했다"고 했다.

대학가에서나 떠돌던 '족보'가 초교생에게도 광범위하게 나돌고 있다. 족보(族譜)는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학교 시험의 기출문제를 뜻하는 은어다.

인터넷에서 '기출문제'를 검색해보면 족보닷컴, 내신닷컴, 기출닷컴, 문제닷컴 등 여러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 사이트에서는 전국 초·중·고교의 과거 기출문제와 수행평가 문제, 그리고 동영상 강의까지 제공되고 있다. 100만여명으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모 사이트의 경우 '전국 1만1천여개 초·중·고등학교의 약 47만개 시험 문제 파일 자료를 구축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초등 족보 서비스를 접속해 보면 중간·기말 고사는 물론이고 수학·과학 경시대회 문제까지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자주 출제되는 문항과 유형을 중심으로 예상문제, 실전문제, 문제풀이 동영상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학년별, 지역별 검색도 가능하다. 학부모 이모(39)씨는 "단원별로 학습을 하기 편리한데다, 경시대회 기출문제까지 확보하고 있어 좋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내신 성적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중·고교생뿐 아니라 초교생들마저 실력을 다지기보다는 편법을 통한 '성적지상주의'에 사로잡히고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대구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이형필 장학사는 "기출문제만을 반복적으로 푸는 것은 시험보는 훈련이나 다름없다"며 "초등학교때부터 요령만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학생의 미래가 어두워진다"고 했다.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대법원은 '학교 시험문제 저작권 소송'에서 교사들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관련 사이트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대법원이 시험지에 교사의 이름을 명기한 경우에만 저작권을 인정한데다, 이마저도 교사 개인이 해당업체에 대해 민사나 형사 고발을 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대응법이 없다.

한국교총 대구지부 서상희 사무총장은 "시험문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교사들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우리 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현재 교총이 국회에 시험문제의 상업적 이용을 막는 법률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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