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는 역시 이름값을 했다. '여름'이면 떠오르는 그곳.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작렬하는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벗어라. 더 벗어라'며 열기를 퍼붓는다. 1평도 채 안되는 비치파라솔 그늘 아래 꼭꼭 숨어있던 비키니족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비키니. 그들은 선텐오일을 듬뿍 바른 뒤 끈까지 풀고 엎드린다. 그옆으로 늑대들이 기회를 노린다. 뜨거울수록 좋다. 이열치열 해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곳. 지난 주말 60만 피서인파가 운집했던 해운대의 낮과 밤은 뜨거웠다.
#오전 7:00=조선웨스틴호텔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길이 1.46㎞의 백사장.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모래사장에 꼽히기 시작했다. 파라솔, 튜브, 비치베드를 하루 빌리는데 각각 5천원. 바가지는 거의 없었다. 해병전우회, 거리질서위원회 등 부산의 42개 단체가 파라솔 임대사업을 신청했고 봉사실적 등을 바탕으로 21곳이 뽑혀 두달간 운영한다. 바가지를 씌운 사실이 발각되면 벌점을 받고 내년에 사업을 신청할 수도 없고 신청해도 탈락된다고 한다.
#오전 10:00=파라솔 밑으로 피서객들이 몰렸다. 한 알바생이 영업전략을 귀띔했다. "쭉빵걸(늘씬한 미녀의 속칭)은 무료로라도 우리 파라솔에 끌어들여야 해요.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그 옆으로 남자들이 우글우글 몰리거든요. 그날의 승패는 누굴 모시느냐에 달렸죠." 그 역시 음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바다에서 가까운 곳은 파라솔이 빽빽하게 꼽히고 돗자리가 제공된다. 주로 가족들이나 단체들이 이용했다. 그 뒤로 비치베드와 파라솔이 놓이는데 '섹시한' 선텐족을 위한 것이다. 알바생의 말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누가 누워있으냐에 따라 벌써 자리가 꽉 찼다.
#낮 12:00=해운대 일대를 둘러보면 지난해와 달라진 게 많다. 눈에 띄는 것은 대문짝만한 협정요금표가 각 편의점마다 붙어있다는 점이다. 콜라 250㎖ 800원, 오징어 7천원 하는 식이다. 바가지상혼은 썰물처럼 빠졌다. 노천카페의 요금도 대동소이하다. 게다가 지난해 천막식에서 디자인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샤워장 이용료는 1천원, 물품보관료 3천원으로 지난해와 같다. 백사장 모든 곳에서 노트북이나 PDA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무료로 운영되는 메이크업룸과 모유수유실이 새로 생겼다. 하루 6천~7천개가 꼽히는 파라솔에서 치킨, 자장면, 탕수육을 주문해도 기가 막히게 배달된다.
#오후 2:00=해운대 인파가 최고조에 달했다. 해수욕장의 정중앙에 위치한 '해운대구 관광시설 관리사업소' 양편으로 인파가 빼곡해졌다. 왜 이곳을 찾는지 물어봤다. 대전에서 방학을 이용해 친구 4명과 함께 왔다는 대학생 이태성(27)씨는 "여름하면 해운대! 물이 좋잖아요. 하루종일 눈도 즐겁고요. '여름의 해운대에서는 몸매자랑하려는 늘씬녀를 모두 만날 수 있다'고 하잖습니까!"라고 했다. 이지혜(27·여)씨는 "일단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죠! 여기 오려고 석달간 다이어트했는데 충분히 뽐내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겠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가족들과 함께 왔다는 오진환(40)씨는 "마치 외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불결한 해수욕장이 아니라 미래형이랄까? 모든 편의시설이 해수욕장 인근에서 해결 가능하니까 좋다"고 했다.
국내 해수욕장은 해수욕, 놀이, 휴식, 쉼터로 쓰인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대부분 선텐, 서핑 등 레저를 위한 곳이다. 그러니 외국인들에게는 좀 답답한 구석이 있다. 밥 화이트(30·호주·학원강사)씨는 "워낙 파라솔이 빽빽해 공놀이도 어렵고 서핑은 하지 못하도록 해서 답답하다. 하지만 멋진 곳이다"고 말했다.
#오후 4:00=해운대를 숫자로 보면 어떨까. 7월 1일 개장해 28일 현재까지 300만명이 다녀갔다. 지난해에는 1천581만명이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이 해운대를 찾았다. 부상자 10명에 사망자는 아직 없다. 미아가 31명 발생했지만 모두 부모를 찾았다. 행정·경찰·소방 근무인원은 일일 60여명. 자원봉사자만 230명이다. 하루 6, 7톤의 쓰레기가 발생하고 28일까지 66.9톤이 처리됐다. 환경미화원만 99명이다. 파라솔 보유량은 1만1천개이고 보통 6천, 7천개가 해변에 꼽힌다. 해운대구청은 피서절정기인 8월 3일에 파라솔 1만5천개를 백사장에 꼽고 '세계 최대의 비치파라솔 설치 해수욕장' 기네스북 등재에 도전한다. 이변이 없는한 전세계에 유례없는 기록이다.
해운대의 축복은 백사장 면적이 증감을 반복해 큰 위기를 맞았으나 올해가 1992년 이후 가장 넓어졌다는 데 있다. 부경대 위성정보학과 최철웅 교수팀이 1947년부터 지난해까지 24차례 해운대 해수욕장 항공사진을 분석한 결과, 조선웨스틴호텔에서 한국콘도 앞에 이르는 1.8㎞ 백사장 전체 면적이 지난해 11월 6만2천934㎡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후 8:00~새벽까지=오후 8시쯤 해가 지자 해운대는 불야성을 이뤘다. 인근 주민들이 하나 둘 나와 산책을 시작했다. 웃통을 벗은 조깅족, 유모차를 끌고나온 부부들, 맥주캔을 든 피서객들이 다시 모였다. 눈을 돌리면 외국인들이다. 궂은날에는 낮보다 밤의 백사장에 인파가 더 빼곡하다. 낮동안 눈맞은 젊은 커플들은 나이트클럽에서 젊음을 뿜어냈다. 해운대 백사장이 '자율금연구역'으로 지정된 후 흡연인구도 대폭 줄었다. 박태원(33)씨는 "낮동안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놀고 저녁엔 멋진 카페가 있는 달맞이고개에서 밥 먹고 조개구이로 유명한 청사포에서 한잔 걸친 뒤, 광안리로 이어지는 광안대교를 달리면 모든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해운대는 밤에도 잠들지 않았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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