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문화] 한국 표준시

입력 2008-06-07 07:00:24

우리 나라에 표준시(標準時) 제도가 처음 도입된 때는 지금부터 딱 100년 전인 1908년이다. 그 당시 한국표준시는 동경 127도 30분의 자오선을 기준으로 정해졌으며, 칙령 제5호에 의해 그 해 4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그 이전부터 서울사람들이 평시에 사용하던 시간개념을 공식화한 절차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이른바 을사조약의 여파로 설치된 한국통감부의 위세가 극에 달하고 있던 때에 채택된 것이라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말하자면 그 당시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움직이는 기차를 일컬어 '올라간다'는 표현이 일본인들에 의해 공공연하게 나돌만큼 국운이 크게 기울던 시점이었다. 이것은 열차운행이 일본 동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말이었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그 시절에는 이미 일본의 표준시가 우리 땅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서울 남산에서는 우리 시각보다 30분이나 빠르게 오포소리가 울려 퍼지고, 우체국과 같은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일본인에 의해 건설된 경부철도의 운행시각도 전부 일본 표준시에 따라 운행될 정도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표준시가 공식 반포되면서 통감부 하급관청의 근무시간과 철도운행시각 등이 모두 우리 나라의 표준시간에 따라 바로 정돈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상황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와 더불어 시간에 대한 주권 역시 완전히 일본에 빼앗겨버린 탓이었다.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 표준시의 변경이 강요된 것은 1912년의 일이었다. 그 해 정초부터 식민통치자들의 편의에 따라 동경 135도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는 일본의 표준시가 적용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대와 동일한 표준시각이다.

그런데 시간대를 제멋대로 변경하려는 일본제국의 횡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세력하에 있던 만주와 대만의 경우에도 표준시의 변경이 이뤄졌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곧 영토 팽창에 앞서 시간의 통일이 무엇보다도 긴요했음을 잘 말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일제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정초에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표준시를 1시간이나 앞당겨 일본의 표준시를 적용하게 하였으며, 곧이어 1937년 10월 1일에는 1895년 이래 동경 120도의 서부표준시가 적용되던 대만의 표준시를 폐기하고 이보다 1시간 빠른 일본 본토의 중앙표준시로 통합하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에 대한 주권을 다시 찾은 때는 언제였을까?

우리 국토의 그 어느 곳도 통과하지 않는 동경 135도의 자오선을 버리고 원래대로 동경 127도 30분의 시간대를 회복한 것은 1954년 3월 21일이었다. 이날은 그 해의 춘분일이었으며, 해방이 되고도 무려 9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간신히 되찾은 우리의 시간대는 오래지 않아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뒤에 민주당 정부의 발의에 따라 동경 135도 표준시로 환원하는 법률안이 마련되었다가, 군사정권이 들어선 1961년 8월 10일부터 현재와 같은 표준시 제도가 정식으로 시행된 탓이었다. 이 당시 군사작전상 일본과의 시간대 일치를 필요로 하던 주한미군측의 요구가 표준시 변경의 결정적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스스로의 시간대를 유지한 기간은 10여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우리는 구태여 서머타임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본의 아니게 사시사철 30분씩이나 일찍 일어나는 매우 부지런한 국민이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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