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토종이 힘이다

입력 2007-01-23 07:31:01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경주 출신 박목월 시인이 노랫말을 쓴 동요 '얼룩 송아지'의 한 구절이다. 아마 이 동요를 들은 대다수 사람들은 얼룩 송아지와 그 어미인 얼룩 소를 흰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젖소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동요 속 얼룩 소는 전통 한우의 변종인 칡소라는 게 정설이다. 황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어 얼핏 보면 호랑이 같기도 한 칡소는 교배가 까다로워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동물'이 되고 말았다.

칡소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우리로부터 멀어지거나 잊혀진 토종(土種)이 정말로 많다. 어렸을 적 집에서 흔히 보았던 까만 토종돼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김천 지례 등 특정한 곳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존재가 됐다.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탓에 사라진 토종들이 비단 칡소와 흑돼지 뿐일까. 산과 들의 나무와 풀, 야생동물을 비롯해 계곡과 하천을 누비던 물고기와 곤충, 우리와 더불어 살던 가축 등 토종들이 하나둘씩 잊혀지고 사라져갔다.

토종들이 없어진 데 대해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 땅의 사람들과 딱 맞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우리와 같이 호흡해오면서 토종은 사람과 유전자가 비슷해진 것은 물론 정서적 교감도 나눠왔다. 토종돼지 경우 비록 빨리 자라지는 않지만 우리 민족처럼 강인한 기질을 갖고 있다. 실제로 제주 흑돼지는 바이오 장기이식용 미니돼지 생산연구사업에 참여했다. 또 농촌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어릴 적 친구가 돼 준 장수하늘소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종자전쟁'이 벌어지면서 토종이 차지하는 위치는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고 있다. 동식물 유전자를 이용한 신약개발이 엄청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게 오래전이다. 종자주권시대를 맞아 선진국은 유전자확보에 열을 올리며 개발도상국의 동식물을 깡그리 수집해가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잊혀진 토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되살리려는 노력이 불이 붙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지례 흑돼지'를 전국 최고의 축산물 명품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선 김천시처럼 토종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총성없는 종자전쟁에서 우리 몫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동요 '얼룩 송아지'를 부르면서 정작 머릿 속에 떠올리는 소는 서로 전혀 다른 웃지못할 상황도 되풀이돼서는 안될 것이다. 종은 한번 잃어버리면 복원이 불가능하기에 토종을 지키려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이대현 스포츠생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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