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의 교육 프리즘)칼 포퍼와 논술 교사

입력 2007-01-16 07:14:09

자신을 문화 사업에 종사하는 전문직 여성이라고 소개한 어느 고2 어머니가 논술 때문에 상담하러 왔다. 대다수 사람들이 묻는 일반적인 질문과는 그 내용이 달랐다.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아들이 논술학원에 1년 다니더니 너무나 이상하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하소연을 그대로 옮겨본다. '어느 날 식사를 하다가 아들 녀석이 느닷없이 히틀러와 칭기즈칸 중 누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히틀러라고 답했습니다. 아이가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잠시 저를 노려보더니 엄마는 좀 더 정확한 판단력과 진보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고 힐책하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자기는 칭기즈칸이 더 나쁘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히틀러보다는 칭기즈칸이 사람을 더 많이 죽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가 차서 누가 그러더냐고 물었더니 논술 선생님께서 그렇게 가르쳐 줬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전국에 불어 닥친 논술 광풍은 많은 재야 지식인들을 논술 사교육 시장에 끌어 들였다. 인문·사회학적인 소양이 풍부하면서 탁월한 분석력과 비판적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논술을 지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교사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거나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고 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논술 교육의 목적과 취지, 그리고 그 지도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칭기즈칸이 더 나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이 관점도 문제가 많다), 맹목적으로 믿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자 칼 포퍼는 전체주의가 세계를 위협하고 있던 1945년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출간했다. 포퍼는 이 책에서 완전한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수단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입장을 '점진적 사회공학'이라고 불렀다. 포퍼는 열린사회를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사회라고 정의했다. 그는 소수 지배층이 권력을 독점하고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곳을 '닫힌사회'라고 불렀다.

논술 교사는 열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열린 생각이란 자신이 옳거나 그르다고 믿는 사실이나 신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자세로 생각하는 것이다. 논술 교사는 학생이 다양한 관점에서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형성과정에 있는 순진한 학생들을 '닫힌교실'에 몰아넣고 일방적인 주장과 주입으로 그들의 창의력을 말살해서는 안 된다. 논술 교사는 포퍼가 책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다음 대목을 곰곰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노력하면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윤일현 (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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