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4050](2) 울트라마라톤에 빠지다

입력 2007-01-13 17:06:34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을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라 한다. 하지만 100리가 넘는 마라톤 코스를 "너무 짧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별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울트라마라톤 마니아들. 그들은 왜 보통 사람들이 걸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그 먼 거리를 극심한 고통을 무릅쓰고 뛰고 또 뛸까?

지난 주말 경북대 대운동장 앞에서 만난 KUMF(한국울트라마라톤연맹) 대구경북지맹 회원들. 컴프라는 단체 이름이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했다.

이날 연습에 참가한 이들은 5명. 40세 여성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52세까지 중년층들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놀라운 기록을 갖고 있다. 서해 강화도를 출발, 60여 시간에 걸쳐 동해 강릉까지 308km를 달리는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 완주한 것.

"길에서 도를 닦는다고나 할까요? 울트라마라톤을 하다보면 육체적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뚫고 완주한 후 찾아오는 희열과 성취감은 그 무엇에 비할 수 없지요." 1999년 마라톤에 입문, 2001년 서울 동아마라톤대회 마라톤 풀코스 완주 이후 울트라마라톤에 뛰어든 이태재(53) 씨는 왜 뛰느냐는 우문(愚問)에 철학적인 답을 내놨다.

같은 지천명(知天命) 연배인 김의철(52) 씨도 완주의 쾌감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라 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 완주를 하고나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처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생기지요. 자신에 대한 승리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연습 참가자 가운데 홍일점인 김선자(41) 씨는 울트라마라톤을 하면서 건강을 다지고 있다. "3년 전부터 취미활동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울트라마라톤 덕분에 감기 등 잔병이 없고, 나를 이길 수 있는 의지력도 강해졌습니다. 엄마가 운동하는 것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등 교육에도 도움을 받지요."

권동진(49) 씨는 연습을 위해 1주일에 4, 5번씩 대구 북구 복현동 집~서구 내당동 반고개 부근 직장 사이를 뛰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42차례 완주하고, 2004년 미국 보스톤마라톤대회에 다녀온 이후 울트라마라톤을 새로운 목표로 삼게 됐습니다. 뛰면서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지요." 극한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만큼 젊은층보다 중년층에서 울트라마라톤 마니아가 많은 것도 특징 중 하나.

올해 부산~임진각사이 537km를 완주한 유수상(44) 씨. 울트라마라톤에 뛰어든지 4년째인 그는 이 대회에서 1㎞를 달릴 때마다 몸담고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마라톤동호회 회원들로부터 50원씩 적립받아 모두 260만 원을 장애아동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뛰는 동안 처음에는 아내와 자식,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고 고통이 심해지면 신(神)을 찾게 되지요. 나를 괴롭혔던 것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스스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남을 용서하는 마음도 생겨납니다."

달리는 것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이들 모두는 야심찬 2007년 목표를 세웠다. 50대인 이·김 씨는 전국을 일주하는 1천500km 울트라마라톤대회를 완주하는 것이고, 여성인 김 씨는 전남 해남 땅끝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643km를 완주하는 것이 포부다. 권·유 씨는 246km를 뛰는 아프리카 사하라사막마라톤대회 참가를 목표로 잡았다.

"발바닥은 마찰열로 붉게 달아오르고 실핏줄이 터져 한발 뗄 때마다 비명이 절로 나옵니다. 하루 100km를 달리면서 눈을 붙이는 시간은 3시간도 채 안되지요. 그러나 완주 후에 찾아오는 '나를 이겼다.'는 성취감은 이 모든 고통을 말끔히 씻어줍니다. 울트라마라톤은 강철 같은 의지 앞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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