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징그러워라."
시인 김지하는 두 손을 들었다. 8시간에 걸친 희대의 노래 대결에서 결국 항복했다. 조용필과의 대결에서도 낙승했던 그가 30대 중반의 무명에게 패한 것이다.
이동순(57)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가 20년 전 김지하 시인과 벌였던 노래 시합을 꺼냈다. "당시 충북대 전채린(전혜린의 친동생) 교수 집에서 열렸죠. 2절까지 부르는 것이 기본이고, 1절까지 부르면 -1점, 3절까지 부르면 +1점을 매기기로 하고 벌인 시합이었습니다."
노래 대결을 좋아한 김 시인이 수소문 끝에 이 교수를 찾아와 벌인 이 시합은 오후 8시에 시작해 오전 4시까지 이어졌고, 결국 김 시인은 "징그럽다."는 말로 항복 선언을 했다.
이 교수는 '걸어다니는 노래 사전'으로 불린다.
지금도 가사 안 보고 300여 곡을 3절까지 부를 수 있다. 노래방 기기에 의지해야 노래할 수 있는 요즘 세태에 희귀한 일이다. 그것도 중학생 때 다 외운 것이다.
그가 가요산문집 '번지 없는 주막'(도서출판 선)을 펴냈다.
그의 '지독한' 가요 사랑과 애착이 짙게 담긴 책이다. 우리 가요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또 노래에 담긴 사회상과 역사적 의미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남인수, 백년설, 이난영, 김순남 등 인물과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골라 사연과 이면사도 실었다.
후반부에 '나의 대중가요 편력기'에는 김 시인과 벌인 시합을 비롯해 이 교수가 우리 가요를 사랑하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가요는 고달픈 그의 어린 시절을 어루만져준 유일한 위안이었다. 태어난 지 열 달도 안 돼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 교수는 백년설의 '어머님 사랑', 남인수의 '어머님 안심하소서' 같은 노래가 마음속에 깊이 사무친다고 말한다. 공책에 가사를 적어 따라 부르면서 그의 '가요사랑'이 시작됐다.
커서는 가요 음반을 구하러 부여, 목포, 전주 등 전국을 헤맸다.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이 1930년대 초반에 발매된 '황성옛터' 이다. 첫 출반될 때 이름은 '황성의 적(跡)'. 요즘 1천만 원을 호가하는 희귀 음반이다.
80년대 중반 12만 원을 주고 샀다고 했다. "얼마나 기쁘고 흥분되던지 세차장 구덩이에 빠져 늑골이 4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웃었다니까요."
수많은 곡 중에 애창곡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래들이 모두 저요! 저요! 하는 것 같다."고 웃으며 "그래도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와 고운봉의 '명동블루스'를 가장 많이 부른다고 했다. 90년대 후반 국내 가요는 "가락과 가사가 힘들어 듣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이 교수는 대구MBC 라디오에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교양과목 '한국의 대중가요와 생활사'를 인기리에 강의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가요사를 가수별, 작사가별, 작곡가별로 정리하고 싶다."는 그에게 가요는 삶이고, 운명이며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