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이동순 영남대교수

입력 2007-01-13 08:58:48

"아이고, 징그러워라."

시인 김지하는 두 손을 들었다. 8시간에 걸친 희대의 노래 대결에서 결국 항복했다. 조용필과의 대결에서도 낙승했던 그가 30대 중반의 무명에게 패한 것이다.

이동순(57)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가 20년 전 김지하 시인과 벌였던 노래 시합을 꺼냈다. "당시 충북대 전채린(전혜린의 친동생) 교수 집에서 열렸죠. 2절까지 부르는 것이 기본이고, 1절까지 부르면 -1점, 3절까지 부르면 +1점을 매기기로 하고 벌인 시합이었습니다."

노래 대결을 좋아한 김 시인이 수소문 끝에 이 교수를 찾아와 벌인 이 시합은 오후 8시에 시작해 오전 4시까지 이어졌고, 결국 김 시인은 "징그럽다."는 말로 항복 선언을 했다.

이 교수는 '걸어다니는 노래 사전'으로 불린다.

지금도 가사 안 보고 300여 곡을 3절까지 부를 수 있다. 노래방 기기에 의지해야 노래할 수 있는 요즘 세태에 희귀한 일이다. 그것도 중학생 때 다 외운 것이다.

그가 가요산문집 '번지 없는 주막'(도서출판 선)을 펴냈다.

그의 '지독한' 가요 사랑과 애착이 짙게 담긴 책이다. 우리 가요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또 노래에 담긴 사회상과 역사적 의미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남인수, 백년설, 이난영, 김순남 등 인물과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골라 사연과 이면사도 실었다.

후반부에 '나의 대중가요 편력기'에는 김 시인과 벌인 시합을 비롯해 이 교수가 우리 가요를 사랑하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가요는 고달픈 그의 어린 시절을 어루만져준 유일한 위안이었다. 태어난 지 열 달도 안 돼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 교수는 백년설의 '어머님 사랑', 남인수의 '어머님 안심하소서' 같은 노래가 마음속에 깊이 사무친다고 말한다. 공책에 가사를 적어 따라 부르면서 그의 '가요사랑'이 시작됐다.

커서는 가요 음반을 구하러 부여, 목포, 전주 등 전국을 헤맸다.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이 1930년대 초반에 발매된 '황성옛터' 이다. 첫 출반될 때 이름은 '황성의 적(跡)'. 요즘 1천만 원을 호가하는 희귀 음반이다.

80년대 중반 12만 원을 주고 샀다고 했다. "얼마나 기쁘고 흥분되던지 세차장 구덩이에 빠져 늑골이 4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웃었다니까요."

수많은 곡 중에 애창곡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래들이 모두 저요! 저요! 하는 것 같다."고 웃으며 "그래도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와 고운봉의 '명동블루스'를 가장 많이 부른다고 했다. 90년대 후반 국내 가요는 "가락과 가사가 힘들어 듣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이 교수는 대구MBC 라디오에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교양과목 '한국의 대중가요와 생활사'를 인기리에 강의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가요사를 가수별, 작사가별, 작곡가별로 정리하고 싶다."는 그에게 가요는 삶이고, 운명이며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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